기록문학 62

2020년의 나는 좆밥이었다

갑자기 참치가 너무 먹고 싶어져서, 정확히는 학교 선배가 나에게 학회장을 승계하려 2020년 10월에 데려가 먹인 참치집이 생각나서 선배와의 카톡 기록을 찾아보았다. 웬걸, 선배가 착한참치 추천할 때 나는 미세노센세 제안하고 앉아 있었다. 더 좋은 데 가도 된다며 멋쩍은 웃음 남기는, 박제된 카톡 속 선배가 진정으로 존경스러워졌다. 2020년의 나는 전역도 하고 알바도 하고 과대도 해서 스무살, 스물한살 따위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대단한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 따위 이상한 이모티콘이나 만들어 쓰는 좆밥이 카톡 속 박제되어 있었다. 참치는 고급문화, 일본식카레돈까스는 가성비충으로 뜬금없이 급 나누니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재택알바, 서포터즈, 당근마켓, 실험참가 근근이 하고..

기록문학 2022.02.05

결론만 말하고 다니다 보니

경험이든 사고실험이든,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내린 결론들이 있다. 주로 미래에 대한 결정이라든가 인생관이 그렇다. 복잡한 도출 과정을 거쳤으나 결론 자체는 대부분 단순하다. 순간 순간에 집중해야 되는 사회적 상황에서 난 일장연설을 지양하기 때문에, 맥락이 닿았을 때 '결론만으로' 내 입장을 내놓곤 한다. 문제제기를 위한 문제제기를 좋아하는 자칭 공능제, 쌈닭들은 내 결론을 "착해빠졌다" "허황됐다"라고 평가절하한다. 내가 결론을 내릴 때 관여시켰던 것보다 낮은 가치판단 단계에서. 같은 세월 혹은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 가치판단의 성숙도가 나보다 낮다는 것을 괘씸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수십 년이라도 단조롭게 살아왔으면 정신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으니까. 성숙도를 올리기 위해, 완벽하게 질 높은 교육 또..

기록문학 2022.01.26

2023 임용고시와 대면

드디어 나도 임고생이 되었다. 24시간을 내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고 싶어서, 빨리 임고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써야 했던' 2021년 내내 바래왔다. 나의 그 말을 듣는 후배마다 어안이벙벙해했다. 이해한다. 나도 저학년 땐 절대 되기 싫은 게 임고생이었으니까. 성격이 변했다. 끝도 없이 재미를 추구하려던 성질은 날 시간낭비하게 하는 무언가를 덜어내는 방향으로 변했다. 덜어내면 남은 중요한 것들을 온전히 즐길 수 있으니까..? 노인이 된 거지. 공부는 자본의 투하라고 생각한다. 서비스에 돈을 지불해서 공부하면, 그 서비스에 들어간 남의 노력을 소유하게 된다. '힘들게 공부해야 할 지점'에서만 힘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지점을 누가 정해놨냐고? 공부에 왕도가 어딨냐고? 이게 내 문제..

기록문학 2021.12.28

운명을 믿는 편이다

노력하면 된다! 쌍팔년도 경제호황기식 성공신화를 운명으로서 믿는다. 내 운명은 그걸 향해 전진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인생은 개척하는 거라고' 나를 계몽시키려 달려들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인다. 운명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질문엔, 신념을 축적하다 보니 내가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냈다고 답하고 싶다. 이 지점에 다다르면 일거수일투족을 그 운명이라는 것에 일치시키게 된다. 말투부터 취향까지, 포브스 선정 올해의 CEO에 맞춰지는 거다. 그런 연기가 완성형에 가까워진 요즘은 그저 잊어버리고 살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떠올리며 복습한다. "난 이 메소드 연기를 하기 위해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나의 목적지를 생각했고, 괴리로 인해 스트레스 받았으며, 코웃음치는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 입 다물었다." 잊어버리는 순..

기록문학 2021.12.13

2021년 12월 : 불만 없음

요즘 글감이 생각이 안 난다. 의외로 좋은 시그널로 받아들여진다. 글로 써야 할 만큼 세상일에 대한 분노가 감지되지 않는, 평온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일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예정되어 있다. 2021년 12월은 다음 해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다닐 일이 많다. 인간관계는 떨쳐내고 싶은 적은 떠나가게 만들었고, 곁에 삼고 싶은 사람들은 남아졌다. 이걸 어쩔 수 없이 달성하지 못해 2021년의 반은 욕구불만으로 지냈다. 2021년도, 2020년처럼 물질적 욕망을 하나 둘씩 충족시켜 나갔다. 2020년에 기타가 생겼다면, 2021년엔 양주, 탄산수, 전동 커피 그라인더, 게이샤 원두, 정장, 라이더자켓, 프레드페리, 버티컬마우스가 생겼다. 시행착오투성이의 대학생활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교..

기록문학 2021.12.11

사실상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mbti검사 : mbti form q

결론 : 정식검사 결과 ENTJ가 나왔다. 이제 난 죽을때까지 ENTJ다. (물론 3개월 이상 지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암 ㅎㅎ) 동기 지난학기 학교 과제가 교내 심리상담센터에서 심리검사 받고오는거였다. 개중에 mbti검사가 있어서, 공짜로 mbti 정식검사 받으면 좋겠단 생각에 신청했다. 근데 웬걸, 국민 야매 mbti 사이트 16personality보다 떨어지면 떨어지는 검사 및 결과 퀄리티였다. 가이던스 정식검사가 만들어진 지 상당히 구형인 탓이 컸다. 그로부터 수 개월 후, 자기 직전 침대에서 인스타 스토리 광고 넘기다 mbti 정식검사 '고급형'이 있다는 것을 봤다. 조사 결과 가이던스 정식검사 (이메일 인증키로 검사지 받는거) 맞았고, m(기본형)과 q(고급형, 더 많은 문항과 더 자세한 ..

기록문학 2021.09.12

난 은사가 없다

12년간 은사라고 할만한 사람은 못 만났다. 불행이 아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대충 가르쳐지고 졸업했을 거다. 선생이 잘못했거나 내가 잘못했거나. 늘 둘중 한명이 잘 못해서 인연들은 이어지지 못했다. 시대가 잘못이라고 본다. 선생의 대부분은 느긋한 대가리꽃밭 사상을 강요했고 애들 대부분은 교사가 자기에게 관심 갖는걸 극도로 싫어했다. 내 입시관을 평온한 안빈낙도 교육자의 길로 인도한 분을 어찌저찌 입대 직전까지 만난 날, 노무현과 민중의소리에 열광하는 대깨문임을 알았을 때 수치심에 잠식되었다. 군대에서 기계공들, 하사들을 보며 왜 진작 저쪽 직렬에서 한없이 쿨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지 못하게 됐을까...를 여러 번 연발했다. 그 결과, 세상이 점지해준 공직자의 길을 기왕 갈거면 말단 실무자에 머물지 말고 ..

기록문학 2021.08.23

스쳐간 인연들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도 허무하게 스쳐간 인연들을 반추해보자. ㅇㅅ과 S 대학교 입학 직전, 패기롭게 열었던 대학용 블로그를 보고 같은 학교라면서 카톡으로 접근했다. 말그대로 '우리 학교 사람 중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흥미로웠다'라는 이유. 여름방학이었는데 그래서 여름방학 내내 얼굴 한번 안 보고 동아리, 독서 등등 여흥적 주제를 꽤 광범위하게 다뤘다. 나름 친밀해져 개강하면 밥 한번 먹자고 했다. 그 해 난 극성 '이기적 내향인*'이었는데 그쪽도 그에 근접했는지, 서로 먼저 약속 잡아주길 기다리다가 끝났다. 현재까지 가장 개연성 없는 인연으로 기억된다. ㅂㅇ과 C 1학년 말 군대 가기 직전, 이제야 인간관계를 과 동기 이상으로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가장 친한 동기의 "나 다른..

기록문학 2021.08.23

내 적성은...

내가 몸담는 문과 분야의 문과 친구 대부분은 물화생지 중 '화학, 생물' 좋아했다고 한다. 정말 천성 문과들이다. 문이과 구별이 일제의 잔재라지만 언어적/분석적 지능이 구분되어 따로 발달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반면 나는 물리를 공부한 사람들이 써내려간 신화들을 굉장히 많이 봤고, 여자애들처럼 수첩에 알록달록 적어놓고 이것저것 딸딸딸 외는 것보단 그래프로 미래를 예측하는게 상대적으로 재밌어서 만약 내가 이과였다면 물리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일 없다고 믿었던 2학년 여름방학 때 ebs 개념완성 물1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근데 내 예상이 틀렸다. 일단 이해했으면 그 다음부턴 암기였다. 꼭 수능 문제를 빨리 풀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냥 사고를 빨리 할려면 다 아는 과정은 알파벳 하나로..

기록문학 2021.08.20

위시리스트

요즘 돈이 있으면 꼭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물질들을 나열해보고자 한다. 언제까지나 2021년 8월에 꽤 고심한 결과 나름 내 취향이고 나중에 내가 직장인이 되어서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물건들이므로 미래의 나든 이 글을 보는 다른 사람이든 '명품 잘 모르네'하면서 폄하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돈 많이 쓰고 싶지 않은 분야가 있는 거다. 내가 일렉기타 60만원짜리 살거라고 하면 악기연주 쪽에 있지 않은 10에 6은 기겁할거지 않은가? 최근 정확히 그런 말을 들어서 하는 말이다. 1. 시계 : 크리스토퍼 와드 C65 시리즈 C65 Sandhurst | Christopher Ward MOD licensed Inspired by the Smiths W10 watch, given to British soldie..

기록문학 2021.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