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참치가 너무 먹고 싶어져서,
정확히는 학교 선배가 나에게 학회장을 승계하려 2020년 10월에 데려가 먹인 참치집이 생각나서
선배와의 카톡 기록을 찾아보았다.
웬걸, 선배가 착한참치 추천할 때 나는 미세노센세 제안하고 앉아 있었다.
더 좋은 데 가도 된다며 멋쩍은 웃음 남기는, 박제된 카톡 속 선배가 진정으로 존경스러워졌다.
2020년의 나는 전역도 하고 알바도 하고 과대도 해서
스무살, 스물한살 따위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대단한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 따위 이상한 이모티콘이나 만들어 쓰는 좆밥이 카톡 속 박제되어 있었다.
참치는 고급문화, 일본식카레돈까스는 가성비충으로 뜬금없이 급 나누니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재택알바, 서포터즈, 당근마켓, 실험참가 근근이 하고 코로나로 갇혀서 돈 쓸 데 없어진 덕에 전재산 100만원 모았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던 거 보면 수준 알만하지 않나? 인생의 통과의례가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특별한 사람을 기쁘게 하려면 고급문화 맛집을 잘 선별해놓자)
이 블로그엔 2020년에 쓴 글이 참 많다.
학부 강의일 뿐인 형태론, 90년대 나온 고소설강의로 영속성 있는 컨텐츠를 계획했다니 소름이 끼친다.
대가리만 잘린 채 엉거주춤한 폼으로 찍은 기타 커버 영상은 다행히 몇 달 전 문득 창피하여 내렸다.
연습 끝에 집앞 철봉에서 턱걸이 1개 성공한 사실에 기뻐해 생일날 지인에게 근황으로 교환해줬다.
그냥 갓 딴 운전면허로 엄마 경차를 몰고 대전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졸업학점을 40학점 덜 계산해서 두 학기째 공강 두 번 놔가며 할 일이 없'게 만들어놨'으니 아침에 내린 김치맛 커피마저도 찬미할 시간이 충분했다.
이렇게 아이처럼 도전적 과제들을 깨어나가고
운전하고 턱걸이하고 기타칠줄알게되고 100만원모은 나는 미래의 워렌버핏 하면서 자기효능감을 쑥쑥 키우느라 여념 없었던 2020년의 내 모습이
코로나로 인해 집근처 동네에서만 포착됐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진다. 그나마 2020년의 날 본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봐서 빨리 잊어주길 바랄 뿐이다. 지금은 지난 과오는 앞으로의 달라진 모습으로 닦아야 한다는 걸 안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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