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

스쳐간 인연들

머니코드17 2021. 8. 2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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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도 허무하게 스쳐간 인연들을 반추해보자.

 

  • ㅇㅅ과 S

대학교 입학 직전, 패기롭게 열었던 대학용 블로그를 보고 같은 학교라면서 카톡으로 접근했다. 말그대로 '우리 학교 사람 중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흥미로웠다'라는 이유. 여름방학이었는데 그래서 여름방학 내내 얼굴 한번 안 보고 동아리, 독서 등등 여흥적 주제를 꽤 광범위하게 다뤘다. 나름 친밀해져 개강하면 밥 한번 먹자고 했다. 그 해 난 극성 '이기적 내향인*'이었는데 그쪽도 그에 근접했는지, 서로 먼저 약속 잡아주길 기다리다가 끝났다. 현재까지 가장 개연성 없는 인연으로 기억된다.

  • ㅂㅇ과 C

1학년 말 군대 가기 직전, 이제야 인간관계를 과 동기 이상으로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가장 친한 동기의 "나 다른 친구랑 술먹는데 너도 올래?"제의를 수락. 그는 학내 락밴드의 베이시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래서 음악 취향 관련 얘기를 심도 있게 나눌 수 있었다. 학내 락밴드는 언제나 연주자가 부족한 실정이었기에 나에게 기타가 부족하다며, 기타를 제의했다. 당시 다루는 악기가 하나도 없었고 새로 배울 자신도 없었던 나는 '곧 군대 간다'며 사양하면서도, 드럼은 어떠나?라고 현실성 없는 제안을 맥락 파악 못 하고 해댔다.

  • ㅎㄱ과 A

군대 작업 중 작전과 아저씨가 자기 동료들과 하는 말을 들었는데 나와 같은 대학교 같은 학번이었다. 당시 말년이라 낮가림 같은 거에서 거리낌이 없었던 나는 "저 그 대학교 17학번 국어과에요"라고 말을 걸었다. 기대 이상으로 반가워해줘서 고마웠다. 학교 얘기, 알바 등등 옛날 생각 나는 얘기로 노가리 시간을 채우고 퇴근할 때가 되자 복학해서 연락하자고. 여자 소개 시켜준다는 말과 헤어졌다. '후자'가 실현되는 상상으로 이틀 정도 기분 좋았다.

  • 신입 알바

전역 후 독서실에서 알바를 하는데 다른 요일 파트 신입분이 내 근무때 공부하러 온 날이 있었다. 총무로 앉아있는 나에게 사물함 관리법을 배워야 한다길래, 알려줬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내가 공부하려고 펴놓은 책들에 관심을 가져서 그것도 알려줬다. 거기서부터 서로 뭐 준비하는지, 각자 사정은 어떤지 등등 얘기를 나눴다. 곧 내 퇴근시간이 다 됐고 서로의 갈 길을 응원하며 헤어졌다. 혼자 하는 알바라 사람 만날 일이 없어서 꽤 흥미로운 만남이었다. 근데 머지않아 그 신입이 손님을 두둔하는 입장에서 사장에게 항의(?)했다가 '사정이 생겨서'를 빙자로 다신 볼수 없었다...


공동체마을 집성촌이 아닌 현대사회는 어차피 그날 모이고 그날 흩어지는 각자 사정들의 이합집산. 처음 만나는 사람과 10마디 이상 대화할 경우가 10번 있으면 3 정도는 이어지는 거 같다. 그리고 10마디 이상 주고받을 컨텐츠가 다양한 사람일수록 확률은 높아지는 거 같다. 100명을 만나고도 음..어..네..아진짜요?만 하다 나오는 죄없는(?) 내향인은 교무실 반 뺑뺑이가 우연히 점지해준 대여섯의 고만고만한 동창들과 서운함 투성이의 우정을 이어갈 뿐이다. 허구한날 카페 가서 설탕물 마시며 쓸데없는 수다 나누고 한얘기 또하면서.


*내가 말하는 '이기적 내향인'이란 대인관계 발전을 위한 자기 쪽에서의 노력은 일절 안 하면서 사람들이 날 폄하한다고 불평하는 수동적 내향인들을 말한다. 쉽게 말해 누구에게도 먼저 말 안 걸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안 다가온다고, 우연히 친해진 동창 끼리끼리 급우 서너명 불러내 무료 공감 갈구하는 거. (중고딩 소규모 급식팸은 학교 편제가 랜덤으로 몰아넣은 학급이란 단위에서 생존을 위해 뭉친 단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는 이 인적 네트워크의 가치를 아주 낮게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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