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은사라고 할만한 사람은 못 만났다.
불행이 아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대충 가르쳐지고 졸업했을 거다.
선생이 잘못했거나 내가 잘못했거나. 늘 둘중 한명이 잘 못해서 인연들은 이어지지 못했다.
시대가 잘못이라고 본다. 선생의 대부분은 느긋한 대가리꽃밭 사상을 강요했고 애들 대부분은 교사가 자기에게 관심 갖는걸 극도로 싫어했다.
내 입시관을 평온한 안빈낙도 교육자의 길로 인도한 분을 어찌저찌 입대 직전까지 만난 날, 노무현과 민중의소리에 열광하는 대깨문임을 알았을 때 수치심에 잠식되었다.
군대에서 기계공들, 하사들을 보며 왜 진작 저쪽 직렬에서 한없이 쿨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지 못하게 됐을까...를 여러 번 연발했다. 그 결과, 세상이 점지해준 공직자의 길을 기왕 갈거면 말단 실무자에 머물지 말고 끝까지 가보는 걸로 동기를 수정했다. 영감은 하우스 오브 카드.
남자라면 감투죠. 하하하.
역사 하면 통찰이지.
그저 교과서를 읽을 뿐인데 10에서 70을 끄집어내는 나즉한 시골 훈장님같은 분에게 2년 연속 수업을 들으며 직감했다. 이분이 내 최후의 은사님이샸다.
점심시간 학교 뒷산을 매일 오르며, 가끔 등산한다는 그분의 엉덩이를 마주쳐 단둘이 깊은 얘기 나눌 심적대비를 했다. 1번 성공했는데 성과는 -다음번에 할얘기를 많이 남겨놓은-수준.
소논문 수행평가,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리던 나의하찮은 식견으로 그분을 감탄시킬 수 없었다. 교사 지망생이라고 고작 브나로드운동이나 조사했으니...
수능 후, 인생을 배우고 싶으면 찾아오라던 대학大學 강독반.수강생은 나 포함 2명. 기숙사 늦잠을 포기하고 날마다 졸아서 딱밤을 맞았다. 주어진 날수가 충분치 못해 어영부영 끝났지만 그걸로 내가 기억됐을까?
태권도를 하라고 했던 그분의 말씀을 지켜가느라 4단 갱신을 하고 1학년 2학기 때 태권도 동아리를 들었는데 좆목질을 제치고 목적달성을 하느라 힘겨웠다.
그해 12월 친구들이랑 재롱 부리는 모교방문 때 나눴던 얘기도 기억이 안 난다. 왤까?
그날 밤 동창들과 펜션잡고 마신 과일소주가 씻겨줘서일 거다. 재수 끝난 친구들과 밤새 마시고 한밤중 공주의 못 보던 풍경을 들여다보면서, 불완전했던 고딩생활의 응어리를 푼 느낌이랄까.
짝사랑의 감흥도 그때 딸려 씻겨진 듯.
내 은사님이시다, 은사님 만나러 간다.
이제 은사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스물 몇살 친구를 본다.
물어보고 싶다. "은사의 기준이 뭐냐?"
100% 시비조로 듣고 싸우자 할 거다.
갈등을 피하기 위한 부연설명은 피곤하다. 정말 누굴 은사로 불러야 되는지만이 궁금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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