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8

수능 끝나고 한 일

나는 수능 끝나고 대학교 들어가기까지의 시기를 참 재미없게 보냈다. 스키장도 가고 해외여행도 가며 끝없는 자유를 누릴 줄 알았는데 스키를 같이 탈 친구가 있어야 했고 해외여행을 갈 가족의 여유가 있어야 했다. 이득을 보려면 자원을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가만히 기다리면 때가 왔다며 세상이 금덩어리를 던져줄 거라고 21살 때까지 믿었다. 우선 수능 끝난 날 엄마랑 싸웠다. 국어 시간이 부족해서 비문학 지문 2개 정도를 못 읽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3등급 확정이었다. 막상 고사장에서는 멘붕하지 않았다. "남들도 불수능이었을 거다. 1등급컷 80점대일 거다."라는 행복회로가 꽤 잘 오버클럭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오버클럭이 수학, 영어를 안정적으로 풀고 1등급을 받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

기록문학 2020.12.13

니체 명언의 증명 : 나죽못고나강

블로그가 말라죽었던 이유를 다음 문장으로 일축하겠다. '강의 듣고 정리글 올리는 게 사치스러울 정도로 여러가지 일을 벌려놓고 수습했기 때문' 이거 끝낼라치면 저기 톡방에서 짹짹대는 일의 무한반복이었다. 사랑과 감정, 서로에게 희망을 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사람은 손에 꼽는 주제에 일적 사람과 카톡방만 수십인 외로운 사업가의 기분이 느껴졌다. 11월 초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었다. 아무데서나 짜증이 솟구쳤다. 그래서 코로나 한적한 곳으로 살짝 바람을 쐬고 왔다. 경치들(심지어 건물들까지도)이 짜증을 털어버리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작년 락페를 갔다온 직후가 그러했듯 얼마간은 실제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편안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일의 쓰나미가 다시 몰아닥쳤다는 얘..

기록문학 2020.11.21

도서부원(약웃김)

나는 고등학교 때 그럴듯한 동아리활동을 해본 적이 없다. 학교를 성실하게 다닌 것 같은 결과값의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정작 내 학교생활은 여러 곳에 구멍이 나 있다. 동아리가 잘 이루어졌을때의 가치를 알아서 그렇게 느끼는 거다. 중학교 땐 그럴듯한 동아리가 있었다. 바로 학교 도서관을 관리하는 도서부원이었다. 지금이야 찐따 1픽 스펙이지만, 그땐 나름 권위의 상징이었다. 지도교사가 워낙 군기를 잡고 독불장군이어서 애들도 따라 조폭화되었던 걸수도 있다. 확실히 도서도우미 완장을 달고 교실마다 쳐들어오면서 책 반납하라고 불호령을 치고 나가는 선배들의 모습은 뭔가 좀 무서워보였다. 그럼 중학교 초반엔 하나의 찌끄레기였던 내가 어떻게 그런 완장질을 할 수 있었는가? 간단히 뭉뚱그리면 '능력주의 채용'으로 볼 수..

기록문학 2020.09.12

밤에 쓰는 글

잠이 너무 안 온다. 읽을 책도 없다. 누우면 침대가 눅눅하고 온도는 추움과 더움의 양극을 오간다. 코감기까지 걸려서 체온조절이 더 안되는 것 같다. 뭔갈 하다가 지쳐 수면욕이 내 몸에 가해지는 불편을 이길 때까지 기다렸다 잠들어야 한다는 처지가 역겹다. 그리고 지금도 그 짓을 하고 있다. 요즘 나는 강제개행을 하는 식으로밖에 글쓰기를 못 하나 보다. 좋은 연설문이지. 내 인생에 연설은 없을 거라고 점쳐놓은 시절 써놓은 글은 문단 구성이었다. 모든 걸 설명하려 했고 모든 걸 조심했다. 자진해서 세상 속에 은둔하길 원했던 그때로 돌아가길 원치 않으면서도, 그때만큼 순수한 태도로 생각과 탐색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현재의 한계가 아쉽다. 나는 매우 최근에 갖게 된 이 외향적인 태도가 앞으로의 내 삶에 가능성을 ..

기록문학 2020.09.12

잘가라, 나의 캠퍼스 라이프여!

남들은 동아리 선배, 짝번후배 밥약, cc를 했다말았다로 점철되는 대학교 2학년을 좀 더 값지게 가져보려 군대를 미리 다녀왔더니 코로나 속 마스크 안 답답한 입김 속으로 내 대학생활 2년이 꼬로록 침몰했다! 그래도 2학기는 '우한페렴'이 막 한국에 쳐들어오던 1월,2월보단 상황이 나아져 기숙사라도 갈 줄 알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잠시 내려놓은 왁자지껄한 일탈도 벌여볼 작당도 해봤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사랑제일교회가 '너 대학가지마라' 라고 쐐기를 박는구나! 슈퍼전파가 시작된지 이틀만에 내가 사는 지역으로 그쪽 사람과 접촉한 확진자가 남하했다. 2학기 기숙사 입사신청을 물렸다. 어차피 수강신청한 전 강의가 원격강의로 진행된다. 설마 아직도 상황파악 못한 학교가 나에게 '2학년 의무입사, 의무 학식'을 강..

대학생활&공부 2020.08.16

주기율표 깜지 (울이말글 판본보다 좋은 수정본)

중학교 때, 3년간 우리 학년을 따라다니며 가르치신 과학 선생이 있었다. 그만큼 진정으로 제자가 잘 되길 바라시는 훌륭한 스승님이었고, 일진들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분이셨다. 나의 교사 롤모델이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이 주기율표만은 제대로 외우고 졸업하길 원했고 그래서 시행한 조치가 '주기율표 깜지'였다. ​ 사진에 나온 양식을 5장 베끼어 매주 검사를 받았다. 숙제를 안 해올 시, 20cm 자로 손바닥 5대 맞기라는 '신사적인' 체벌이 가해졌다. 의외로 아팠다. 이 2학년 내내 가는 귀찮은 숙제를 영원히 면제받으려면 숙제 검사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주기율표를 암송하면 됐다. 물론 암송을 틀리면 깜지를 안 해왔을 때와 같은 젠틀한 체벌을 받았다. ​ 급우들은 처음엔 다들 고통스러워하며..

기록문학 2020.08.08

지고서도 모욕감을 주는 방법

나는 달리기가 느리다. 동네 태권도장에서 5년 짬킹으로 2학년~4학년들 위에 군림하는 맛으로 유년을 때우긴 했는데 어차피 발육이 좋았을 뿐이었고, 운동회나 체육시간에 동급생들끼리 하는 50m 달리기는 4인 1조 중 3등이나 겨우 하는 수준이었다. ​ 중학교 2학년 때 싫어하는 남자애가 있었다. 같은 반에 같은 아파트 단지였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나의 하굣길에 들러붙어 시덥잖은 말로 귀찮게 하거나 살살 놀렸다. 내 보호본능 발동영역을 상습적으로 침범하는 걔의 장난에 스타크래프트 테란 OST를 핸드폰에 넣어 듣고 다니던 나는 미련한 초식동물처럼 어쩔 줄 몰라했으며 그 애가 악의 조직이 되고 나와 동료들이 소탕하는 소설을 썼다. ​ 걔는 ㅇ씨였고 나도 ㅇ씨여서 출석번호가 가까웠..

기록문학 2020.08.08

나는 사색이 많다 = 개똥철학을 절제한다

비슷한 말로 문학소년, 감수성 풍부 등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참 듣기 싫은 말이다. 활동성이 떨어지는 것 같거든. 뱃살 나와 있을 것 같거든. 처음으로 내가 행동파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뒤 그 결심을 주변 사람들에게 천명하려고 요란하게 노력했다. 어딜 가서 뭘 하더라도 대단한 걸 하는 것처럼 사진을 찍어 올린다던가... 지금은 많이 점잖아졌다. 솔직히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강제하는 일도 '사색'의 연장선 같다. ​ 이런 식으로 생각을 이어나가면 뭔가를 억지로 하려는 것, 억지로 안 하려는 것 모두가 사색이 되고 개똥철학이 된다. 그래서 지금 그 '억지'의 상태로 내가 넘어가려 할 때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일거수일투족이 '내츄럴'해질때까지 기다린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물과 같은 상태가 되어..

기록문학 2020.08.08

수학도움반

고등학교 첫 수학 중간고사에서 27점을 맞았다. 그 점수를 맞기까지의 여정은 지금도 진주알을 꿰듯이 서술할 수 있다. ​ 철저히 수능 평군 1.8등급의 관점에서 재판하자면,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곳은 물학군이었다. 그 안에서 반 1등, 전교 십등 안에서 노니 일진부터 학원 선생님들까지 함부로 못하는 배리어(...)는 당연히 씌워졌고 나는 그 달콤함을 느끼며 안전히 중학시절을 마쳤다. 언제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다녔기에 친구들은 아직도 그때를 나의 리즈시절이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 쓰게 될 고등학교 수학 27점을 비롯한 뒷일들로 인해 나는 그 말만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 당시엔 특목고 열풍이 불고 있었고 나는 나름 힘을 써서 전국에서 신입생을 모집하는 명문고에 들어갔다. 입시설명회에서 그 학교..

기록문학 2020.07.28

휴가 레퍼토리

휴가 나갈 놈은 알아서 6시까지 부대 나갈 준비를 마쳐놓으라니! 기본적인 알람시계 정도는 제공해야 마땅치 않은가? 라고 내면의 무한복지주의자였던 이병인 나는 생각했다. 전자 손목시계의 희미한 알람소리조차 못 들을까봐 뜬눈으로 휴가 전날 밤을 지새웠다. 이 상태는 스톱워치 구입을 까먹은 말년까지 지속되어 3시간마다 잠에서 깨 시각을 확인하는 생체리듬을 대강 가지게 되었다. 첫 휴가날 새벽은 4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옆에서 자던 상병(!)이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거 아냐?"하고 속삭였다. 소름.... 공군에 있으면서 대략 20번의 휴가를 나왔다. 길이는 2박 3일부터 7박 8일까지 다양했지만 아직 사회 진출이랄 게 없는 스물한~스물두 살이었기 때문에 다이내믹한 일 없이 비슷비슷하게..

기록문학 2020.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