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가 말라죽었던 이유를 다음 문장으로 일축하겠다.
'강의 듣고 정리글 올리는 게 사치스러울 정도로 여러가지 일을 벌려놓고 수습했기 때문'
이거 끝낼라치면 저기 톡방에서 짹짹대는 일의 무한반복이었다. 사랑과 감정, 서로에게 희망을 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사람은 손에 꼽는 주제에 일적 사람과 카톡방만 수십인 외로운 사업가의 기분이 느껴졌다.
11월 초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었다. 아무데서나 짜증이 솟구쳤다. 그래서 코로나 한적한 곳으로 살짝 바람을 쐬고 왔다. 경치들(심지어 건물들까지도)이 짜증을 털어버리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작년 락페를 갔다온 직후가 그러했듯 얼마간은 실제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편안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일의 쓰나미가 다시 몰아닥쳤다는 얘기다. 나는 늘 그러했듯 열심히 야구빳다로 쳐냈다. 그래도 이번엔 일의 밀도가 95%쯤에서 40%쯤으로 내려갔다. 때문에 중간중간 텅 비고, 운전도 좀 하며 기타도 좀 치고 문명할 시간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거기서 근력이 좀만 더 좋았다면 이 블로그도 뽀득뽀득 닦고 있었을지도.
명백히 아직 미결한 일이 지금 당장에도 남아 있다. 그 중 하나는 모두의 잠수로 80%가까이 궤멸된 프로젝트를 발표 4일 남겨놓고 깨워 어찌어찌 발표대에 세워놓기라도 해야 하는 지경이다. 다음주말 이 자리에 다시 앉을땐 죽이 되든 밥이 되어 있겠지. 함부로 종결시키지도 못하는 고통을 기다리기만 하는 게 가장 아픈 것 같다. 그 고통의 출처는 여러 곳이며 꿈속의 유령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향해 둥실둥실 다가오고 있다. 불안을 떨쳐버리려 낮에 운동을 하고 밤에 맥주를 까봐도 그때뿐이다.
이 짜증을 친한 친구에게 개인톡이나 단톡으로 말끝마다 씨발 거리면서 표출할 수도 있었다. 할 일은 적고 시간은 많았던 1학년 때 많이 그래봤다. 고민상담, 하소연, 카타르시스... 좋은 단어선정들이 많다. 그러나 그 모든 말들의 나쁜 단어선정은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다. 손해는 오로지 내 꺼라는 걸 올해는 다행히 알았기 때문에 화풀이를 참느라 애썼다. 화를 참기는 힘들어도 화풀이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 건 쉽다. 폰을 일단 침대에 던진 다음 운동하고 맥주 먹고 게임하면 된다. 아까 그때뿐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맞다. 그런 자기 혼자만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다. 정 근본을 원한다면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해버려야지. 제거하는 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큰 임무고, 그 기간 동안 정말 참을 수 없을때 운동, 맥주, 게임 등으로 조금씩 깎아내는 거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행이 좀 오래가긴 하더라. 친구 불러다 앞에 앉혀놓고 스타벅스 음료잔 쥐고 화풀이 실컷 하는 일도 깎아내는 일 중 하나일 거다(난 화를 말로 설명하느라 더 짜증이 나서 잘 모르겠다만). 하지만 그건 친구의 마음에 잔상을 남긴다. '그때뿐이 아닌'거다. 무슨 말인지 알죠?
중요한 건 남 앞에서 '외향적인' 화풀이를 하면서 내가 화를 참고 살아야 할 운명이 아니란 걸 천명하지 않고, 화(스트레스)를 안에 담고 사는 생활을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스트레스는 늘 내 안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일정량의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 나중에 비슷한 강도의 스트레스를 마주했을 때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고, 더 큰 스트레스를 비용으로 요구하는 도전적인 일을 집어들게 한다. 성공했을 경우 그 도전에 상응하는 영광은 내가 가져가는 거다. 결국 돌고 돌아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할 뿐이다. 아퀴나스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듯 니체의 명언을 부동의 동자로 만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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