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비극은 예정되어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우울한 일이 벌어질 것이고 기분도 그를 따라갈 것이다.
해지기 전을 틈타 옆동네의 근사한 아파트 단지로 런닝을 뛰고 올 수도, 반반의 확률로 치고 싶어지는 기타를 집어들 수도 있다. 그럴 때면 기분은 일시적으로 좋아지고, 일시적으로 내 삶은 충만해진다.
처음엔 66일 동안 그런 걸 한다면 눈 깜짝할 새 내가 환골탈태하고 세계를 지배할 줄 알았다.
'1년 전과 달리 그냥 할 수 있게 된 것'이 하나 늘어났다는 점은 명백하다. 습관이 만든 확실한 공산품이다.
내 기분에 있어서만큼은 취미활동은 익숙해지면 술만큼 일시적이라는 걸 이내 깨달았다.
할 때만 즐겁다. 늘 즐거우려면 늘 그것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난 돈과 더불어 내 건강(특히 청력)을 막대하게 소모하고 있을 것이다.
왜 즐거워지려면 뭐든지 돈이든 건강이든 체력이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걸까. 인생은 그 대금을 많이 비축했다가 이따금씩 쓰려고 사는 건가?
눈 딱 감고 '항상 취미를 하는'인생을 택할 수도 있다. 건강은 돈으로 더 나은 장비를 구매함으로써 대체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취미하는 자체가 돈이 될 수도 있다. 사실 난 반쯤 망한 이번 생을 그런 쪽으로 살아가기로 어느 정도 결정을 내렸다. 장기적으로 내 인생 항로는 그쪽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항상 망할 놈의 단기가 문제다. 지금 나에게는 취미와 전혀 상관없는 일거리들이 공중에 떠다니고 있다. 계획적으로 잘 어르고 달래면 나름 보람찰 듯한 일도 있고, 쳐다보기만 해도 악취를 풍기는 것도 있다. 뚜껑이 열리면 얼마나 나를 개처럼 굴릴지 가늠이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도 있다. 동시적으로 해결하다 보면 뒷일이 남아 있는 그런 구조다. 말이야 단기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장기의 행복 속에서 살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에피쿠로스적인 그 날을 '전역'이라고 대충 이름을 붙여보자.
전역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난 수없이 순간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휴가를 나가고 휴게실에서 라면을 먹고 TV연등에서 영화를 보고 점호 때마다 웃고 떠들었다. 항상 그러고만 살 권한이 없었기에 전역으로 가는 과정이 내게 내리는 퀘스트를 충실히 수주했다. 훈련, 노가다, 꼬인 전산, 사고친 것 수습, 갈수록 세지는 제재 등등. 가끔 그런 화내고 웃기를 반복하는 일상에 색을 칠해보려고 누구도 시킨 적 없는 독서랑 한자급수를 건들어보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거 아닐까?낮에 빡치고 저녁에 풀고 가끔 나에게 유리할 껀덕지를 따로 힘들여 갖고. 다만 셋의 양과 정도를 조절해야겠지. 게임적 허용 때문에 모든 게 단순했던 군생활과는 달리 이번 생은 진짜니까.
어쨌든 질질 끌려가는 듯한 현재의 '단기' 생활이 아예 오답은 아닌 듯하다. 세상이 내게 받으라고 시키는 고통과 내게 쾌락을 주는 취미... 둘 중 어느 게 내 인생에 해로울지는 아무도 모르니 일단 둘 다 취하고 있어야 된다. 난 내 욕심 때문에 남들보다 빠른 성공을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측에서 하나하나 묶인 매듭을 (끊거나) 풀고 삭제할 건 삭제하다 보면 어느 날은 여친이 생겨 있고, 어느 날은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써서 인생을 업그레이드하고, 어느 날은 높은 지위에 오르고 날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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