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중학시절 나는 범생이라는 숙명에 이끌려 원하지 않아도 도서부원의 공간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동료들에게 '낙하산'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불리며 정식 도서부원이 되었다. 교내에서 동아리 모집하는 건데 채용의 공정성이 그렇게 딱딱할 필욘 없잖은가.
일을 아무것도 모르다 보니까, 내 행동을 보고 열심히 배우려는 1학년 후배들의 시선을 피하고 작년부터 해오던 친구에게 많이 의지하면서 2학년 1학기를 보냈다. 순번별로 돌아가며 점심시간에 대출 데스크도 맡아보고, 참가하라는 글짓기대회 예선에도 나갔다.
진짜 이유가 기억이 안 나는데 '독불장군' 지도교사에게 글짓기 관련이었나? 말 전달이 잘못됐나? 하여튼 소통의 문제가 생겨서 지도교사에게 '잘못된 사실관계를 수정하는' 말을 했는데 갑자기 불호령이 날아왔다. 처음 그런 대우를 받아본 나는 그때 정말 당황했다. 그 수정하는 말에 '변명하지 말라!!!!!'는 거였다. 내가 보기엔 변명이 아니라 그냥 이유를 덧붙이는 건데, 듣는 사람이 '변명'이라고 정의해버리면 끝나버리고 그 뒤론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날 아주 병폐 같은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어른이 화내고 소리지르면 저항하지 말고 무조건 굽혀라'
그런 나쁜 기억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였다. 오히려 지도교사는 기분 좋을 땐 화끈하게 즐기는 타입이었다. 동아리원의 자격으로 야외 글짓기대회, 서울국제도서전 등 여러 체험학습을 다니고 학원을 째고 밤에 학교로 짜장면을 시켜먹으며 '매우 자극적인' 독서축제 부스를 준비하는 등 함께 있는 시간이 늘면서 도서부원 친구와 함께 놀던 1학년 남자애들, 3학년 형들과 꽤 많이 친해졌다.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군기 잡느라... 군기의 최정점인 3학년 여자 선배와 서로 놀려먹는 사이인 3학년 형들 라인을 타서 나랑 친구를 비롯한 남자애들은 도서부원 내 위계질서를 초탈하여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겨울방학 때 전근을 가는 독불장군 지도교사의 송별회 후 뒤풀이 차 근처 폐교를 놀러가고 노래방을 갔던 게 그 여자 선배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한 기억이다. 남자 선배와의 연락은 훨...씬 길었다... ㅋ..ㅋ
나는 전보다 더 성실하게 학원을 다니고 열렬한 '깨시민'으로 환골탈태한 중3이 되었고 중2때 꽤 잘 가르치시던 국어선생이 새 도서부원 지도교사가 되었다. 독불장군보다는 비교적 합리적이며 소극적으로 도서부의 방향은 바뀌었지만 나는 그 선생님을 좋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개의치 않았다. 나는 '면접 공채에 합격한' 초등학교 동창과 조를 이루어 대출 연체자 명단을 뽑아 반납을 독촉하는 도서경찰이 되었다. 최고학년에 걸맞는 임무였다. 활동시간이 점심시간이었는데 1학년이든 2학년이든 교실 문이 잠겨있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서로 큰 키를 이용해 제일 위에 있는 창문을 열어 '월창'한 다음, 칠판에 '홍길동, 김영희 무슨무슨 책 반납 바람!!!'이라 휘갈기고 또 창문으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분량이 길어지지...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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