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

대학생활이 싫다

머니코드17 2020. 9. 2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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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처지를 내가 개척해야 하는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 타입인가 보다. 과거에서부터의 끈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대학생활은 나를 팔짱 끼고 바라보며 관찰자의 입장으로만 만들어놓을 뿐이다.

 

난 언제나 어떤 상황에 놓이면 그것의 가장 중요한 목표만으로 달려간다. 군대는 전역이, 대학교는 학술과 졸업이, 알바에서는 사장의 주머니에 돈을 꽃아주는 일이 그것이다. 그것들이 쟁취된, 혹은 쟁취가 가시권에 들어온 다음에야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잘 지내고 싶어한다.

 

이게 대체 첫 문장과 뭔 상관이냐?

과거에서 온 끈이 주변을 보려는 나의 시선을 가린다. 다들 자신들만의 과거를 늘어놓으며 추억에 잠기고 그걸 바탕으로  비전을 형성한다. 남의 역사에 이래라저래라하지 않는 속성의 나는(내 역사가 이래라저래라를 심하게 당할 꼬라지이기 때문이지) 화제가 미래와 현재가 아닌 과거일 때면 무조건 이방인이다. 군생활로 온 힘을 다해 끈에 닿지 않기로 한 나는 끈을 되도록이면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이제 막 잘 지내보려고 하는 주변 사람과 사물들 앞을 빽빽하게 가리는 불가촉의 끈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다.

 

끈을 제쳐두는 일이 물을 마시듯 모국어를 말하듯 자연스러운 현지인들은 과거 얘기만 나오면 입을 꾹 다무는 나를 과묵한 사람 취급하겠지. 어려운 사람. 과거를 이용한 미래를 개척하는 데 도움은 못 되고 그저 같은 미래를 살아갈 경쟁자인 사람.

 

현재와 미래에서만 나는 친절하고 세심하며 야망 있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아무에게나 날카로웠으며 정작 확신은 없어 어질러진 방구석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노래나 듣던 과거의 나를 만지고 싶지 않다. 성인 생활이 익숙치 않았던 당시의 나는 개척자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과거의 끈을 어루만지며 뜨개질하는 타입이었다. 고등학교의 기숙사 벌레와 원룸촌의 방음은 지금 내 관심사가 아니다. 

 

차라리 대면 상황이었으면 나의 부동자세를 해명해주는 많은 증거들이 드러남으로써 사정이 괜찮았을 것이다. 사실 이쪽 분야도 자신은 없다. 그러나 잦은 만남을 통한 극복의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을 것이다. 날마다 옷을 바꿔입고 나오듯이. 날마다 다른 기분으로 인사하듯이. 이 글은 논문이 아니니까 현재의 문제점은 그만 지적하도록 하자. 결론을 말해본다. 난 내 마음의 문을 닫게 하는 대학생활을 한데 뭉뚱그려 싫다고 하지는 않을 거다. 분명 이 시간은 내게 미래로 가기 위한 도움을 주고 있다. 미래로만 나가려면 심심한 대학생활에, 나를 끝없이 심심하게 하는 끈 끈 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환멸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