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

도서부원(약웃김)

머니코드17 2020. 9. 1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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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때 그럴듯한 동아리활동을 해본 적이 없다. 학교를 성실하게 다닌 것 같은 결과값의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정작 내 학교생활은 여러 곳에 구멍이 나 있다. 동아리가 잘 이루어졌을때의 가치를 알아서 그렇게 느끼는 거다.

 

중학교 땐 그럴듯한 동아리가 있었다. 바로 학교 도서관을 관리하는 도서부원이었다. 지금이야 찐따 1픽 스펙이지만, 그땐 나름 권위의 상징이었다. 지도교사가 워낙 군기를 잡고 독불장군이어서 애들도 따라 조폭화되었던 걸수도 있다. 확실히 도서도우미 완장을 달고 교실마다 쳐들어오면서 책 반납하라고 불호령을 치고 나가는 선배들의 모습은 뭔가 좀 무서워보였다.

 

그럼 중학교 초반엔 하나의 찌끄레기였던 내가 어떻게 그런 완장질을 할 수 있었는가? 간단히 뭉뚱그리면 '능력주의 채용'으로 볼 수 있다.

 

도서부원이 아무리 우락부락한 이미지를 형성했다고 해도 원리적으론 교내 찐따들이 하는 행위인 독서에 주기능을 두어야만 했다. 이 정글 같은 중학교 또래집단에서 일1진, 운동, 게임을 잘하려고 해도 모자랄 판에 그 어느 누가 책 따위를 보는데 시간을 할애하는가? 당시 학교 분위기가 다 그랬지 뭐. 벌써 10년 전이 가까워진다. 그런데 나는 그 주기능에 아주 강했다. 심지어 그렇게 책 읽고 공부하는 게 학생으로서 해야 할 가장 건전하고 인정받는 행동이라고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똑똑했던 걸까? 하여튼 공부도 잘했기에 교내 독서골든벨대회에 차출당했다. 거기서 1등을 하고 군기 잡는 지도교사 눈에 띄었다. (책도 안 읽고 억지로 나간 대회였으니 적당히 떨어질려고 해도 패자부활전, 뒤에 참관하는 학부모들이 정답 알려주는... 그런 것들의 향연.) 그때가 1학년 말이었고 이후 복도에서 친구랑 뛰다 걸려 '날 기억한' 지도교사에게 귓방망이를 잡히기도 했다. "이거 독서골든벨 1등한 놈 아냐?" 새학년이 되고 목요일마다 나갈 계발활동을 새로 정해야 했는데(난 기존에 '애니메이션 감상반'이었다. 땡땡 보여주나 했는데 블리치 썸머워즈 원령공주 봤다) 다들 시원찮아 보였다. '할게 없어서' 마지막 칸에 있던 ~~나래(도서관 관리, 신문 편집)에 이름을 적었고 계발활동이 아닌 정식 동아리에 무단으로 기어들어갔다.

 

원래 ~~나래에 들어가려면 선배님들의 깐깐한 면접을 통과해야 했다. 선발된 1,2,3학년들이 계발활동 시간에 도서관에 집합하여 전학대회를 갖고 있었다. 중간에 내가 계발활동인 줄 알고 들어가니까 100개쯤 되는 눈동자가 나에게 쏠렸다.

 

나 : 이거 계발활동 아니에요?

 

지도교사 : 아닌데?

 

1학년 때부터 (선배들에게 시달리면서 불려다니고 고생하던) 도서부원 남자애 친구들 : ㅋㅋㅋㅋㅋ

 

나 : (어쩌지)

 

지도교사 : 너 1등한 놈이지? 들어올래?

 

나 : 네

 

 

 

분량, 시간조절 실패로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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