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됐건 나는 내가 학생 때 선생들의 모습을 보고 교사가 되겠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나온 직후였어도 지금처럼 교사들이 아이들 털끝도 못 건드는 존재이지는 않았다. 강경하게든 온화하게든 교실 안에서 몇몇 선생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나 같은 성실하게 영양흡수를 하던 온실 속 화초들이 후광을 보게 만들었다. 얌전했던 난 공부 말고 내세울 게 없었다. 만화그리기 같은 특기로 인기를 끌어보려 해도 학생 사회에서 높게 쳐주지 않았다. 만화 속 공상세계에선 내 의도대로 세상을 주물렀다 폈다 하는데, 아무 힘도 없으며 너무 많은 강제력의 화살표가 머리 위로 지나다니는 중학생의 생활에서 학교라는 기관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첩보요원이 등장하는 만화를 자주 그렸다), 소음이나 일으키며 자유운동하는 학생들을 통제하고 지휘하는 선생은 후광이 보이기에 충분했고 나는 교사들이 명백한 사회 상류층이라고 믿었다. 골프 치고 외제차 끌고 해외여행 다니고 집에서 클래식 듣고 가사도우미 두고.....그런 상류층. 만약 내가 군대의 열병식과 자랑스러운 장면들을 보며 자라왔다면 너무 당연히 군인이 되겠다고 했을 것이다. (정작 군대는 인권이 없는 매우매우매우 비인간적인 지옥이고 군인들은 그 고통을 즐기는 정신나간 악마들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6살에 습득했다. 중학교 때도 군인 자녀들은 나에게 힘자랑하기 바빴다. 지금은 가짜사나이를 즐겁게 보며 의지와 극복의 가치를 내재화한다)
그렇게 카리스마 있는 선생이 있었는가 하면 반항하는 학생들 앞에서 주술적 힘을 잃은 샤먼마냥 울먹거리는 샌님 선생도 있었다. 수업시간엔 반드시 공부를 해야 했던 내 입장에서 항상 최대볼륨인 반 애들을 못 침묵시키는 교사는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존재였다. 군대 동기와 선임들에게 "(놀리듯이)네 인성에 왜 사범대를 갔냐?ㅋㅋ"라는 질문을 받으면 '반면교사들을 너무 많이 봐서'라고 답했다. 그들은 자극적인 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든 화학적으로든 강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 교사가 '돼야 하는' 현재도 이 조건은 유효하다. 강한 편이 사회적으로도 이롭지 않을까..
일단 중학교 말년에 한번 선생님(이자 공무원)이 되겠다고 하니 만화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보다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이 글에서 기원을 따져보니 도출된 '카리스마적 교사상'을 비롯해, 원하고 되고 싶은 교사의 모습을 시시때때로 변하던 내 취향에 맞게 편집했다. 때로는 민주적이게, 때로는 현학적이게... 내 상상속에서 교육으로 세계제패를 하는 공상을 얼마나 했든, 적당히 먹고 살만한 교사라는 직업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이는 내 '깜냥'을 최저시급만하게 매긴 사람들이 수두룩빽빽해진 고등학교 시절이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워라밸과 연봉의 시대... '워'와 '연봉'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고 노는 시간에서 오는 창조를 하나라도 더 하고 싶은 나로서 아무리 봐도 틀린 답을 억지로 맞게 하려 애쓴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그러나 가위표시를 동그라미로 바꾸기엔 대학교 2학년, 아빠는 퇴직. 시간이 너무 늦었다. 국어 임용은 재능빨이라는 디시의 훈수를 못본 척하고, 지금 손에 잡은 나무조각을 빨리 피리로 바꾼 다음 살 방도를 찾아봐야 한다. 젊은교사들 나중에 연금 없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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