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1 - [기록문학] - 도서부원(약웃김) #2
2020/09/12 - [기록문학] - 도서부원(약웃김)
지난 이야기 : 중학교 도서부에서 2~3학년동안 이런저런 추억을 쌓다.
이번 글은 마지막답게 하고싶은 말이 별로 없다. 그럭저럭 무난하게 3학년까지 활동을 마무리한 얘기가 다다. 기왕 3편에 계속이라고 썼으니 끝내야 할거 같기도 했고.
굳이 도서부에 있었던 변화라면 독서축제날 '귀신의 집'이 3학년 때 폐지된 것? 이름에서 대충 예상 가겠지만 도서관에 오래된 책 보관하는 커튼별실의 책장을 옮겨 미로처럼 만들어놓고 한명씩 그걸 어둠속에서 통과하며 분장한 도서부원들의 놀래킴을 받는 amusement를 제공하는 코너였다. 독서축제는 학교축제랑 같이 진행됐는데 대대로 최고 인기였다. 근데 내 시각에선 그냥 인싸들만의 향연 같아 보였고 길게 늘어선 줄은 어뮤즈먼트 파크는커녕 급식줄 정도의 질서를 보여줬으므로 그 행사에 무한한 애정을 갖진 않았다. 2학년 때 귀신의집 만들때 귀신 역할을 3학년 형누나들이 다 해줘서 꽤 고마웠었다.. 하고 싶었겠지. 바닥은 잘게 찢은 신문지를 깔고 등등 무서운 시설을 설치했는데 그때 내가 봐도 잘 어지른 쓰레기장으로밖에 안 보였다. 결국 귀신의 집을 마음속으로 탐탁치 않게 생각한 나는 3학년 회의 때 보다 소극적 노선을 취한 지도교사 분위기를 따라 귀신의집 폐지 안건이 나오자 '전술적 침묵'을 했고 곧 내 생각대로 되었다. 지금 도서부원 친구들을 술자리에서 만나보면 귀신의집 폐지가 제일 아쉬웠다는데 자극적인 것만 기억하고 싶은 지금 마음으로는 비극인 건 맞다. 허나 그때 중3의 마음으로는 모범적이고 자부심 넘치는 도서부원 활동만을 기대했기 때문에 폐지는 도서부원 최고참인 나의 의지에 따라 수순일 수밖에 없었다.
내 의지가 도서부에 관철된 사례가 하나 더 있었다. 일년마다 발간해야 되는 교내 신문의 표지 디자인이었다. 대부분 중고등학교 신문부가 그렇듯 허섭스레기같은 원고들로 채워지는 게 국룰이다. 커튼 밀실 쓰레기더미에서 건져올린 2006,2007년 개교 초기 신문을 보면 만화도 있던데 최근 신문은 그때 시각에서도 내실 없었던 걸로 기억했다. 마침 내 담당구역이 1면이었고, 한창 감수성으로 충천해 있던 머리를 좀만 써도 메마른 신문 구성에 혁신을 가져올 거라 믿었기에 A4용지에 바람개비 모양으로 휙휙 그어 삼각형들 안에 신문 주요 내용들 프리뷰를 싣자고 콘티를 짜서 지도쌤께 보여주었고, 그대로 수락됐다. 2013년도 학교 신문 1면은 90% 내 의견이 반영된 모양이다. 별거 아니었고 별 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럴 수 있었던 데에는 동기부터 후배까지 무관심이라는 지대한 원조가 있었다.
6월에 서울국제도서전을 한번 더 가고, 11월엔 파주출판단지를 갔다. <리틀 슬립>, <길 위의 소녀> 같은 소위 베스트셀러 소설책을 좀 샀다. 여행을 가면 꼭 기념품을 사야한다는 어린 마음의 발동. 진출과 활동으로서의 여행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반면 지금은 철저히 탈출으로서의 여행이며 연락을 끊고, 좋은 걸 처먹고, 즐겁게 술 먹다 잠들 생각뿐이다. 서울도서전에서 표지만 보고 산 <모멘트>는 명문고 입학 자소서에 독서항목과 면접으로 활용됐다. 별 참신한 기여는 못 했고 '국적을 뛰어넘은 사랑'만 주구장창 외치게 만들었다. 입학 후에는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을 야자시간에 처읽게 만들었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재밌기로는 지구 최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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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큰 트러블 없고 나름 뽕을 뽑았던 도서부원 생활은 졸업식날 지도교사 쌤이 나에게 <강신주의 감정수업>책을 선물해주시면서 끝났다.
2020/02/27 - [다시 쓰는 독후감] - 강신주 - 강신주의 감정수업
그 길로 다시는 중학교 도서관에 들어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대학교 1학년 때 신청한 여름방학 교육청 봉사활동이 모교로 배정되면서 도서관 대출대 업무를 맡아버리게 되었다... 심지어 학부모 관리위원님도 똑같으셨다. 물론 지도교사쌤은 바뀌어 있었다. 역사의 산증이이신 학부모 위원님 말씀으로는 요즘 도서부는 아주 대충 일한다고... 10일동안 2시간씩 풀냉방되는 도서관에서 5년 만에 대출대에 앉아 이틀에 한번꼴로 찾아오는 중학생들의 책반납을 찍어주고 기억하기로는 수강신청도 거기서 했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신과 함께>, <Ho!>등 만화책도 섭렵했다. 용돈은 20만원이었다. 이번 겨울방학에 또 같은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모교는 이번에 배정 학교 목록에 없어서 또 한번 갈 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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