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

꿈 이야기 2

머니코드17 2020. 12. 17.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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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건물을 본 일이 있었는데 유리 녹은 자국이 신기했다. 여길 가고 본 꿈을 꾼듯

 고등학교 꿈을 꾸었다.

 

 주변의 모든 시설물들은 20세기식으로 낡아빠졌고

 

 '얼굴만 아는' 급우들 사이에서 팬티나 속옷 같은 걸 갈아입어야 했다.

 

 너무도 당연히 화장실 칸을 찾았는데 너무도 정확한 그때의 재현.

 

 내가 그들과 가까워지지 못했던 걸 더는 조건으로 치지 않겠다. 태초에 학교에 입학했더니 애들이 다 썩은 표정을 짓고 있더라는 묘사를 더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대신 원인을 추론해보자. 나는 왜 그들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었을까? 하다못해 알바에서 만나는 손님도 두 번 보면 편안에 가까운 감정이 들고 서로 아는 정보를 생략하고 친근감을 대신 매입해 말을 건넬 수 있는데.

 

 우선 입학 초기 나는 학교에 온 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영향력을 확대하리라는 포부를 많은 방면에서 밝혔다. 방송부 DJ가 되겠다고도, 문학동아리 시 발표자가 되겠다고도, 걷어내기 전문 축구 수비수가 되겠다고도, 교육봉사 동아리에서 가장 잘 가르치는 교육 지망생으로도, 야식시간 주문과 배달을 가장 빨리 하는 총무로도. 일은 가짓수가 적을수록 더 잘해진다는 걸 그때는 몰랐으니 더는 그걸로 탓하진 않겠다. 내 죄는 플래너에 너무 많은 계획을 적었고 그걸 동네방네 보여줬다는 거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 하나는 가슴속에 품고 있겠지. 능력과 상황에 따라 될 수도 안 될수도 있다. 안 될 경우를 대비해 미래에 대한 약속은 함부로 하지 말고, 겸허히 결과로만 얘기하라는 말이 있는 건데 난 내 기준으로는 여러 군데 떠벌리고 다녔다. 대부분 나의 능력이 흠이 되어 위에서 말한 어느 것도 되지 않았고 나는 입학날 '내가 쟤보단 잘 나가겠지'하며 자신 있는 눈으로 쳐다본 급우들 중 90%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을 시작했다. 정작 애들은 나의 공약 불이행과 몰락에 대해 아무 신경 안 쓰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신의 입장에서 이 학교를 조망해볼 줄 몰랐다. '나의 시각'만 시각이고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인 줄 알았다. 이건 내가 학교생활이 망가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대비책은 세우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쓰나미가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도 우물쭈물대고 있었단 얘기다. 국경에서 적국 군사가 무력시위를 하는데 전쟁이 아니니 관망만 하고 있었단 얘기다. 이 '생각보다 주위가 정상적인' 인지부조화가 지금도 연락하며 친구일 수 있었던 급우들에 고담시티 부랑민의 얼굴을 씌운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지키지 못할 약속은 입밖에 내지 말라는 것도 그때 배웠지만 철판깔기라는 걸 알았었다면 별 상관 없었을 거다.

 

 꿈에서 여전히 고담시티민들은 자기들끼리만 의미심장한 표정을 주고받으며 나는 뭔지 모르는 일로 웃고 있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최대한 정황을 파악하려 노력해도 공이 와도 들어가질 못하고 들어간 놈 밖에서 허둥거리는 축구 못하는 애의 모습밖에 안 됐다. 공에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공과 그걸 둘러싼 여러 명의 발들 이상으로 가지 못하는 그 상황을 아는가?

 

 온전히 내 것만인 상황 속에 살기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더라. 그 몇 년의 최신의 날 아침에 알람으로 깨어났다.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감격을 감추질 못했다. 수험생의 수동적 삶에서 해방이라는 진부한 감격과 달랐다. 동료에게 나와 같은 종류의 감격을 느낄 것을 강요했다.

 

 그때부터였으니 군대를 포함해 4년이 거의 채워지고 있다. 코로나는 남의 상황이 나에 관여는커녕 시야에서 아예 치워버렸다. 나는 이제 남의 상황이란 게 접시에 놓인 소시지처럼 언제든 불러올 수 있으며 능력껏 다룰 수 있는 물질인 걸로 생각하고 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말고 잠적하려면 입 다물고 침잠하라는 터득한 지혜도 상황을 소시지 보듯 해야 가치가 발하는 거였다.

 

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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