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러는 교육과정 개발의 하드웨어를 정립하였고, 교육목표 설정을 위한 단일한 원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이는 학습자,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바, 교과전문가들의 견해에서 '빈칸에 해당하는 내용'을 수집하여 효용성과 달성 가능성의 논의를 거치면 어떠한 주제도 타일러식 교육과정의 소프트웨어가 될 수 있다는 뜻과 같다. 교육부가 의도한 결실을 거두려면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대입할 것인가에 대한 세심한 논의가 추가로 필요할 것이다.
교육과정 제정자의 입장에서는 개발한 교육과정을 모든 학교와 학급에 보급하는 것이 주 목적인 만큼 절차를 거쳐 정형화된 교육과정을 효율적으로 보급하는 데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상당부분 가능하게 한 타일러의 논리를 많이 참고하게 된다. 반면 직접 학생들을 지도해 온 일선의 교사들은 '보급된' 교육과정이 변화무쌍한 학생과 환경의 조건에 의해 왜곡되고, 기계적으로 그 교육과정을 쫓아야 하는 상황을 겪게 된다.
일선의 교사들이 겪는 이러한 획일적 사태는 타일러의 시대에선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교육과정과 수업의 기본 원리>를 집필할 당시는 행동주의의 시대였고, 기계적으로 양성해낸 인력은 미국의 세계대전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적어도 결과론적으로 검증된 산업주의적 교육과정이 전후 사회를 재건하는 데에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암묵적 낙관에 기초하였을 것이다.
교과의 성격에서 논의를 조금 더 이어나가보자면 사회 교과는 인간적 삶과 국제적 시야 함양에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지닌 교과이다. 정권의 성향 내지는 교사의 편향된 사고에 따라 이런저런 관점을 기른 학생이 배웠던 것과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성인이 되어 마주한다면, 학교에서 '속았다'라는 느낌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사회과의 이러한 민감성을 감안한다면 학생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할 것인지의 논의를 마친 다음 교육목표 진술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대학생활&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외원조 사업에 교육(커리큘럼 보급)도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 (0) | 2021.01.08 |
---|---|
대학교 입사관 입장에서 고등학교 커리큘럼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0) | 2021.01.08 |
중등학교 교육은 왜 아직도 형식도야설인가? (0) | 2021.01.02 |
존 듀이의 보증된 주장가능성(warranted assertibility) (0) | 2021.01.02 |
실생활 중심 진보주의 교육 vs 문화유산 중심 전통주의 교육 - 본질주의자 베이글리(Bagley)의 관점에서 (0) | 2021.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