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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중심, 활동중심 수업은 무조건 좋은 걸까? <다시, 학교 1,2부>, <교사의 고백, 최태성의 해외탐방> 에세이

머니코드17 2020. 12. 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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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기부 장래희망란을 3년 모두 ‘국어교사’로 줄 세우는 일은 나에게 무거운 의미가 있었다. 적응하지 못하고 떠돌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에게 내 의지를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자국어로 명석하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만이 내가 생각한 미래였기 때문에, 내 앞에 서게 되는 여러 국어교사들과 실습생들의 강의식 수업을 ‘나라면 어떻게 국어 수업을 할까?’란 시각으로 관전했다. 좋은 느낌을 주는 수업은 교사 개인의 ‘썰 풀기 능력’에 기반해 흐름을 타는 수업이 대다수였고(주로 문학이 그랬다), 권위주의 수업의 병폐가 한꺼번에 농축된 악몽 같은 수업도 있었다(한 문법 수업이 그랬다). 이루고 싶은 국어수업의 모습에 대해선 별 아이디어가 없는 채로 졸업했고, 그런 고민을 실컷 할 수 있는 국어교육과에 왔다. 2017년에는 2015 개정 교육과정, 4차 산업혁명, 유튜브 문화가 한꺼번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었고 나보다 신념이 확고한 동기들 사이에서도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안내자다. 강의식 수업은 좋지 않다.’가 구호처럼 퍼져 있었다. 나도 그런 생각들에 고무받아 교과교육론 분과원들끼리 하는 수업시연에서 플립러닝을 기획해봤다. 소극적인 분과원들이 내가 마련한 12분의 독서토론 시간에 아무 말을 하지 않자 타이머가 끝나며 수업을 그대로 마쳐버린 기억이 난다. 나는 분과원들이 나처럼 열성적으로 독서토론에 참여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고, 분과원들은 나를 존중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때를 마지막으로 ‘어떤 수업방식이 좋은가?’를 고민했던 기억은 끊겼다. 군대에서도 후임에게 업무를 가르쳐야 했지만 현장훈련(OJT)으로도 충분했고, 그마저 귀찮아서 세세한 것까지 순서대로 적힌 매뉴얼을 만든 다음 내 휴식 속으로 숨어버렸다. (읽고 따라하기만 하면 이병도 상병장처럼 일할 수 있는 매뉴얼을 목표로 만들었다) 다시 사범대학생이 된 지금 수업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 방향을 잡은 편이다. 국가가 의도한 교육목표가 전국에 있는 학생(소비자)들에게 배포되려면 정형화된 유통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학교 1,2부>는 그런 내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교육이 소비자에게 전달할 상품이 ‘지식 학습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라면, 활동중심 수업은 그 상품을 채굴하고 소유하는 과정을 상당 부분 학생에게 위임한다. 주체적인 마음을 기르기에는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급자족 사회에서 만든 수공예품처럼 모든 경우에서 상품의 품질이 좋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교육은 도태 가능한 서비스 상품이라기에는 학생의 인생에서 계속성을 지니므로 상대적 저품질의 교육을 지속해서 받은 학생은 미래 삶의 질에 차이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일부는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그냥 그런가 보다. 학교는 원래 그런 곳인가 보다’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는 조용해지지만, 학생 개인 차원에선 불행을 혼자 감수하는 것이 된다. 과거에는 외부의 심한 통제로 불행이 주입되는 것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불행이 개인 안에서 조용히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 문제다.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서는 비구조화된 수업은 상위권 학생에게만 효과가 있다고, 학습 과잉을 없애려 수업시수를 줄였더니 학습결손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모의고사 중위권 학생이 하위권으로 대거 옮겨간 코로나 시기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학교가 단순히 부모가 출근한 낮에 아이들을 잡아두는 기관이었던 것이 아니라 중위권 비율을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무등교 수업으로 학습결손의 상처가 더 커진 현재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강조한 역량과 활동은 여러 가지 근거로 봤을 때 수정될 필요가 있다.

 

 <교사의 고백, 최태성의 해외탐방>편에서는 영국의 학교가 역량과 다양한 활동 중심 교육에서 역량 중심 교육으로 돌아선 후 교육에 있어 어떤 정신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리듬에 맞춰 저학년 학생들을 장악하는 모습은 ‘역시 대중음악의 나라답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사실 풀어주고 방임하는 교육을 하다가 성인 사회에서 갑자기 통제에 따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외부 압력이 아닌 자유의지가 자신을 통제하도록 도움받아야 한다. 리듬은 도움을 주는 자전거 보조바퀴인 셈이다. 교사끼리의 피드백을 비롯해 강의식 수업의 질을 높이는 방법도 소개되고 있다. 체계화된 질문-답변을 비롯한 수업사태들이 그것이다. 사실 수업 방법이 어떻든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모를 수 있다. 질문하는 방법을 모른다기보다는 어떤 포인트를 어떤 문장으로 질문하고, 강의나 학습활동에서 무엇을 얻어가야 할지를 모를 수 있다. 이런 점이 교사의 짧고 반복적인 시범과 제시들로 매뉴얼화된다면 학생들은 수업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는 더 단단한 비계를 제공받을 수 있다.

 

 어려운 교과서 내용은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학자들의 의견이 세게 반영된 결과인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활동 중심으로 변화한 것은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공부가 아닌 다른 진로를 꿈꾸는 학생을 배려하는 목소리도 반영한 결과다. 그러나 학교에서 다루는 내용이 심도 있었다면 정비사와 무용가가 되려는 학생들도 지식 자체를 사랑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들도 더 숙련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강의식 수업 예찬자로 보일 수 있을 듯한데, 무엇이든지 맹목적인 믿음은 해롭다고 생각한다. 활동 중심 수업은 나쁘지 않다. 다만 과학적인 수업 구상에 특화된 전문가 집단의 손을 거쳐 ‘모듈화’된 수업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임용고시라는 표준화된 방법으로 교사들을 선발했지만 모든 교사가 똑같은 수준의 전문성과 성실성, 수업 개발 여건을 갖춘 것은 아니고 이들에게 소외되는 학생 없이 완벽한 게임 수업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단 어떤 수업 활동이든 ‘수업이 접근하고자 하는 지식, 수업목표’와 멀어지는(소외되는) 학생이 없어야 잘 조직된 수업 활동일 것이다.

 

 활동 중심 수업은 선생님의 강의 시간을 강화하는 방법으로도 보강될 수 있다. 활동 전 개념설명 혹은 정리 시간에 1차시분 핵심내용을 분절되지 않고 계속성 있게 잘 정리하는 강의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지식의 최종 보급자는 결국 교실에 선 선생님들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 사전을 찾아보듯이, 기초 개념이 잘 떠오르지 않는 학생은 자신의 손 든 모습을 선생님이 봐주길 굳이 기다리지 않더라도 단편적 지식을 충분히 제공 가능한 수업 기자재의 도움을 받아도 될 것이다. 지식 중심 수업과 활동 중심 수업은 이런 식으로 융합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

 

  <다시, 학교> 1부와 2부에서 배운 점을 종합하여 앞으로 작성할 수업 지도안에 반영한다면 분명 내가 원하는 ‘유통이 용이한 모듈화’와, 고등학교 시절과 대척점에 선 민주적 교육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수업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강의식 수업(현시적 교수법)의 장점을 충분히 인지 : 교사의 시범을 풍부하게 보여주자.
  • 활동은 : 배운 내용을 모두 끄집어낼 수 있게, '배울 지식'에서 소외되는 학생 없이
  • 정 수행평가가 과목마다 있어야 하고, 학생에게 부담이 되어야 한다면 그 부담을 학생에게 얻어갈 수 있는 걸 남기게 하는 쪽으로 돌리게 하는 것이 좋다.
  • 중등학생은 어떤 리듬으로 통제해야 하는가? : 개개인의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는 스스로 판단하는 성숙한 사람으로 대우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태만의 의지를 따랐을 시 그 결과의 피해를 받는 것은 자신이라는 인식은 심어줘야 한다.
  • 교과 내용별로 지식 제시방법의 차이점을 두자 : 과학, 사회 등 내용교과는 시간적 흐름이나 줄기가 되는 개념을 중심축으로 지식이 구조화된 형태를 학생이 친숙해할 수 있도록, 언어교과는 학생이 해당 언어와 그 언어가 남긴 유산에 대해 잘 알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 교과가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를 고려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 빈칸 채우기든, 만화로 표현하기든 모든 활동식 수업은 해당 차시 수업목표를 잘 반영한 '우수한 시범'이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적어도 그것에 근접해지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자원은 구체적, 체계적으로 제시된 학교의 지식에서 나와야 한다.

 이처럼 수업 지도안에 반영해야 할 사항을 몇 가지 항목으로 정리해보았다. 이를 토대로 체크리스트를 작성한다면 ‘분과 시간 이외에 주어진’ 수업시연과 교육실습, 임용고시 2차에서 수업을 점검할 수 있는 또다른 기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다큐멘터리를 보며 공교육과 사교육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봤지만, 분량이 너무 길어져 생략할까 한다. 다만 전달하고 싶은 요점은 ‘공교육과 사교육은 행동반경이 달라야 하며, 공교육이 키운 구멍을 메우려 커진 사교육 시장을 국가 경제 규모에 포함할 것인지/공교육으로 확대 양성된 잠재적 고급 인력이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주게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이다.

 

 <다시, 학교>의 다른 파트를 다른 교직과목 에세이 과제를 위해 시청한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교육의 현재에 대한 EBS(나아가 교육 관계자들)의 고민이 농축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삼천포로 빠지는 생각이지만 우리나라에도 교육 전문도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오래된 명문고가 아닌 좋은 수업의 본고장이 생겨난다면 <외국 교사의 해외탐방>이 우리나라에서 촬영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