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국어 아이디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문과의 역할은 무엇인가?

머니코드17 2020. 7. 2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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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 교육학개론 과제로 썼던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브금은 <4차 산업혁명이 온 그리스> (원곡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완성악보 <세이킬로스의 노래>)

저희 고등학교에는 진로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나이는 지긋하셨지만 항상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었죠. 그분에게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생각보다 빨리 피부로 느껴지지 않길래 학자들이 유명해지려고 섣불리 만든 용어다라고 차치했습니다.

 

<명견만리-4차 산업혁명은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에서는 수학과 통계 교육의 장밋빛 미래가 펼쳐집니다. 종래의 수학 교육과는 다르게 코딩적 사고력을 기름으로써, AI와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컴퓨터 기술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동력 확보를 위한 교육의 표준화적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데, 분노에 가까운 감정까지 같이 들었습니다.

 

아니, 그럼 국어는 어쩔 거야?”

 

<명견만리-4차 산업혁명은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의 후반부 질의응답 시간에 한 문과생이 일어나 질문을 합니다. “그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문과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나요?” 강사가 답합니다. “상상력입니다.” 이 상상력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구체화해보면, 이공계열이 할 수 없고 인문계열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드러납니다.

 

첫째. 쇼맨십입니다. 이과 학생이나 교육자께 질문을 드리면 답변자 자신의 이해 수준에서 알려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캐물으면 머리를 벅벅 긁으며 ....... ....... 그냥 해.......!!”식의 답변이 돌아옵니다. 간혹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주는 강사님은 자신의 이공계 지식을 최대한 잘 강의할 수 있는 쇼맨십을 획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과 인력에게는 그러한 쇼맨십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상상력이 넘쳐납니다. 이공계열은 대부분 내용 위주의 학문이기에 중등교육 이상 수준에서는 학습할 내용을 제시해주고, 학생이 자습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과 통계와 코딩 교육이 제도권 교육으로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림과 영상으로 최대한 쉽게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해하는 데 들인 여력을 절약하여 응용과 창조에 투입시키는 역할을 인문적 상상력으로 쇼맨십을 연구한 문과는 해낼 수 있습니다.

 

둘째. 도덕성입니다. 수학공부 지지자들은 수학이 안 풀리는 문제를 풀려고 악착같이 늘어지면서, 인내력을 기를 수 있다.”고 수포자들을 계몽시키려 합니다. 저 역시 동생에게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교육이 바뀌고, 수학 공부가 쉽고 재밌어진다면 이러한 인내력이라는 이점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인내력은 교육 현장에서 가르쳐야 할 중요한 덕목이죠. 어려운 수학 교육에서 사라진 인내력 교육을 문과 과목 교육에서 전담해야 합니다.

 

셋째. 직관적 사고입니다. 에스토니아 유치원의 비봇(beebot)에서 볼 수 있듯이, 코딩(프로그래밍)의 본질은 다음 시점에 이렇게 움직이라고 미리 설정하는 것입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이런 분석적 사고만 키우게 하다 보면 상징을 보고 심상을 떠올리는 감수성뿐만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 의외의 기회를 찾는 직관을 키우기 힘듭니다. 분석적 사고만 할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컴퓨터 뒤를 쫓아가는 인간입니다. 당장 가능성을 창출해야 하는 리더에게 중요한 것이 직관적 사고이듯이, 컴퓨터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통수에 서야 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 역시 직관적 사고입니다. 코딩 교육과 다른 영역에서 아이들을 예술가로 키우듯이 인문학을 가르칠 때 직관적 사고가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문과이고 문과 입장에서 쓴 글이다 보니 순진한 말들 투성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이과가 나뉘어져 있는 우리나라 교육환경의 특성상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다 보면 자칫 문과 경시, 이과 우대풍토가 생겨나고, 애초부터 문이과 구별 없이 균형 있는 교육을 도모해오던 해외의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인재 양성 차원에서 따라잡지 못할 것입니다. 에스토니아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인문학 전공자와 엔지니어들이 만나 상상력과 기술을 겸비한 스타트업을 준비할 때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며 문과는 무조건 공무원이라고 한숨만 쉬는 한국 학생들을 계속 보는 것은 앞으로 선생님이 되어야 할 저로서도 싫습니다. 따라서 문과의 가치에 의식적으로라도 주목하려는 노력은 한국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