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

진중해지기 어려운 이유

머니코드17 2021. 1. 1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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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기술쌤에 대한 반발 때문에 내가 더 적극적으로 문과를 선택한 것일지도... 내가 산업의 최전방에 설 기회는 참 많았고 그것을 걷어찰 기회는 더 많았다.

고등학교 때 기술 선생은 정말 대충대충 가르치는 스타일이었다. 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소박한 옷매무새로 시장에서 할법한 말을 내뱉으며 "아유.. 이런 걸 왜 가르쳐야 하는지 몰라....!" 수업 하고픈 마음이 없어 보이는 상태였다.

 

인간상의 데이터가 어느 정도 수집된 지금이야 웃으며 넘기고, 시험범위 알려줄 때만 기다리며 같이 놀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던 17세의 마음엔 '인간실격'을 정의하는 마음의 불이 당겨졌다.

 

나는, 교사라 함은, 모름지기 진중하게 교과서를 읽어주되 이따금씩 학생의 마음에 비수를 두는 만물형상의 진리를 품은 말을 던져주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거기서 더 진화한 교수라 함은, 강연자리에서 늘상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학문의 심연을 하루종일 휘저어야만 함이라고... 그만 알아보자. 적어도 과거의 내 믿음이 틀렸다는 건 아니까.

 

남녀 분반이었던 학교의 반 애들에겐(나 남자다) 당연히 인기 최고였다.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반 애들을 "담시간 기술이니까 미리 자논다 ㅋㅋ" 같은 질 나쁜 말이나 일삼는 하등생물 취급하고, 어울리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했으나(자발적 찐따 맞았다) 세상 물정은 그들이 더 잘 알았다. 교사와 교수의 바람직한 인간상, 아니 환상을 혼자 설정하지 않는게 어딘가. 가끔은 뭔갈 하지 않음으로써 성숙할 수 있다.

 

기술 선생이 갑자기 의외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어 내가 감동먹었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소탈하시다 우리와 헤어졌다. 굳이 발견한 의외의 모습은 '썰'을 푸시다가 아내와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들은 정도?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았겠지만 그분은 가족분을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탁월한 썰쟁이 부류의 교사였다.

 

과목은 기술-국어로 다르지만 나도 곧 썰쟁이 교사가 될 것 같다. 기술쌤 같은 인간상이 내가 가장 될법한 교사 인간상인 이유엔 물론 기술쌤을 앞에 두고 가진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교사, 교수란 응당 진중해야 한다 운운)에 대한 의도적인 반발,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동물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썰쟁이라는 것, 내가 현재 가지고 있고 꽤 자주 증명되는 현실인식(세상엔 어처구니없는 일이 널려 있고, 그것들에 자신의 이상을 대입하면서 일일이 날뛸 필요가 없다. 그 어처구니 없는 원리를 파악하여 올라타 이익을 챙기는 게 장기적으로 볼 때 인적, 사회적 자본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혈혈단신으로 이상을 부르짖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낫다. )은 썰쟁이가 되기에 매우 적합하다는 것이 있다.

 

현실인식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난 낙천주의자도 기회주의자도 아니다. 굳이 말하면 노오력주의자에 가깝다. 썰을 노오력주의으로 끝맺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에게 꽤 교육적인 썰이 될 것이다. 현재는 586이 노력 대비 개꿀빨며 올려놓은 집값, 그때 통했던 감성으로 대충 정한 정책 때문에 장기불황이지만 세대가 교체되고 내가 주류인 미래는 어떨지 모른다. 경제가 호황기와 불황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그때는 또 노력 대비 개꿀을 빠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때에 대비해 불황기에는 본전이라도 챙기고 호황기에는 더 많은 꿀을 챙기게 해주는 노력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다시 말해 노오력이 인정받는 시대가 반복될 거다.

 

어찌 보면 난 과거에 진중함을 추구했지만, 말투와 품행의 진중함만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선비가 되려 하는데 선비의 걸음걸이와 말씨의 단아한 기품만을 따라하려 했다는 말이 된다. 향기를 훔치고 싶으면 향수를 훔쳐야지 공기 중의 향기 분자 자체를 훔치면 소용 없다.

 

지금은 따라하려 하기보다는 우선 알고자 한다. 세상의 진실과 노오력의 가치를. 적어도 진중해지는 방법, 노오력하는 자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감성적 분위기 따위를 알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scent는 능력치가 차면 굳이 원치 않아도 따라 나온다.

 

요즘 내 첫인상에 대한 말을 자주 듣는데 책 많이 읽을 것 같은 사람, 굉장히 날카롭고 차가운 사람이라는 첫인상은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행동거지지 의도한다고 얻어지는 역할플레이가 아니지 않은가?(=내 첫인상은 원해서 얻어진 게 아니라서 맘에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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