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차분하게,
남들과는 침착하게.
그러니까 즉 조용히 강하고 싶다.
학년 초마다 학교에서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하면 엄마가 꼭 써주시는 자녀의 장점이 '차분하다'였다(그래도 엄마 말로는 쓸 게 없으셨단다). 이것은 곧 곰곰이 따져 보면 생각나는 나의 진짜 장점이 되었고, 지금은 이렇게 나를 다스리는 좌우명으로 자리잡았다.
이 깔끔하고 차분한 성격은 아빠를 닮았다. 실제로 아빠는 매우 온화하시다. 가끔은 나도 아빠가 되면 나만의 활기를 겸비하면서 자상함만큼은 우리 아빠를 닮겠다고 다짐한다.
일단 차분하면 좋은 게, 깔끔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계획을 세워 하나 하나 완수해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만족감에 양 손을 가볍게 비빌 수 있다. 필리어스 포그처럼.
침착하면 좋은 게, 흥분하여 길길이 날뛸 시간에 전체적인 상황과 문제를 돌아볼 수 있다. 이는 나 자신을 자존심 세우기와 상대 굴복보다는 협상 결렬과 중심이 되는 문제의 해결로 이끌어 간다. 또한 내 앞에서 감정적으로 화가 나 있는 상대를 "왜 이렇게 흥분해, 가라앉히고 해결책이나 찾자구."하며 제압과 교화로 이어나갈 수 있다.
좌우명을 정하기 전인 몇 년 전의 나의 모습만을 알던 사람들에게 나는 아직 시끄럽고 유유부단한 사람으로 기억날 것이다. 그때 당시에도 나는 말이 빨라지며 흥분하고, 수학 문제를 풀 때 '이거 왜 안돼!'하며 손을 벌벌 떨던 아이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싸우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았고, 좀 더 많은 수학 문제를 풀며 '실수했을 지도 모르니까 다른 방법을 써 보자.'하며 조용히 지우개로 지우는 방법을 터득하여 건강한 일처리와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지금의 나이다. 또, 그 일하고 갈등이 모두 끝나면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여러분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나이기도 하다.
'에듀팟'이라는 학생용 포트폴리오 일원화체계가 한때 흥했다. 그때 나는 선생들이 쓰라고도 안한 자기소개서 작성에 푹 빠져있었다. 좌우명 가족소개 등등 채워넣을 게 꿈쟁이 소년의 이목을 안 끌리가 있었겠는가? 에듀팟 관리자는 내 사생활을 재밌게 봤을 거다. 아무튼 그때 순수한 재미로 쳐넣은 글이다.
글 내용만 보자면 너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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