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

당직

머니코드17 2020. 2. 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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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입대자 시점에서 공군은 몸이 많이 편해 보였다. 혹한기니 유격이니 없다고 해도 그건 훈련 자체가 없다는 말로 일단 들렸고, 짜증나기로 사회에 널리 알려진 '불침번'제도도 없다고 들었다.

그럼 비행기 조종도 안하는 병사가 공군에서 하는 게 뭐가 있지? 정말 새 쫓고 활주로 닦기뿐? 나는 "군생활 내내 ~~만 하다(주로 일상적인 한 가지 일. 커피타기, 화단에 물주기 등) 전역했다"라는 군생활 후기를 참 좋아했고, 롤모델로 삼았다. '일신의 안위'만을 원했기 때문에 3군 중 공군에 입대한 것이다.

 

공군 출신들은 다 아시겠지만 유격 있었고, 공군에서도 병사가 할 일은 차고 넘쳤다. 24시간 감시업무가 아닌 이상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면 예외 없이 한 달에 한두번 꼴로 당직을 서야 했다. 상병을 달자마자 섰던 견습당직부터 병장때 많이 편했던 사령당직까지를 회고해보고자 한다. 지금 내가 전날 프렌치프레스 커피를 잘못 타서 카페인 폭탄을 맞고 밤을 새서 당직과 비슷한 기분이라 쓰는 거기도 하다...

 

한 생활관별로 당직사관(원사~상사급), 당직병이 배치되었는데, 160여명의 대대 병사들이 한 건물을 쓰는 내 생활관은 인력 회전이 잘 되는 편이라 상병 2호봉쯤부터 당직을 설 수 있었다. 다른 말로, 상병을 처음 달고 한 달 동안은 그저 계급을 즐기기만 하면 됐다. 계급을 즐긴다니... 쓰는 지금의 나(예비역 병장)도 황당하지만 그때 일병들에겐 그런 게 중요했다. 적어도 작대기 3개를 달면 부대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일병들을 보고 경례해도 되나?를 고민할 필요가 없잖은가. 오히려 상병이 된다는 것은 그 모든 일병들의 왕이 되는 것이다. 어깨가 으쓱으쓱, 자신감이 우쭐우쭐. 괜히 상병이 군생활 가장 재밌을 때인 게 아니다.

 

그러나 내 기수부터는 한 달 동안 계급을 '즐길'수 없었다. 마침 당직 견습 제도가 생겨난 것이다. 높으신 분이 당직실을 친히 들르셨는데 "견습병! 견습병은 어디 있나? 예전에 있던 걸로 알았는데?"하고 간 게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원래 당직 막내였던 상병 2호봉 밑으로 몇 기수는 견습병으로서, 하루에 한 명씩 선임 당직병과 점호시간 전까지 같이 당직을 서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취침은 정상으로 하니까 근무취침은 없었다. 견습병 입장에서는 퇴근해서 쉬지도 못하고 다음날 또 일하러 나가야 된다는 소리였다. 

 

우리 기수는 매우 불쾌해했다. 한 달만 있으면 견습병 제도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기들이 한 명씩 선임들과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오니 ㄱㄴㄷ순으로 내 차례가 왔다. 금요일 당직이었고, 나보다 2기수 높은 얼굴만 아는 선임이 사수였다. 다행히 착한 선임이어서 (물어보면)친절하게 가르쳐 줬고, 전화 받기, 호출 방송, 인원현황판 작성 등 모든 일을 그가 해 줬다. 나는 당직대 책상에 올려져 있던 매뉴얼 판만 들입다 읽어대다가 점호가 끝나고 눈치보다가 퇴장했다... 금요일이어서 취침시간에 호실 들어가서도 야간 티비시청을 할 수 있었는데다 다음날 출근하지 않는 점은 좋았다.

 

한 달이 지나고, 정식으로 당직을 서는 날이 왔다. 우리가 당직 막내 기수였기에, 가장 안 좋은 당직인 토요일 당직을 받았다. 당직으로 밤을 새면 다음날 출근을 안하고 하루종일 잘 수 있는 근무취침을 줬는데, 그날이 일요일이면 아무 소용 없게 되지 않는가. 금요일 당직도 같은 이치긴 했지만 당직근무 시작 시간이 4시로 일정했기에 퇴근시간인 5시간 이후 연장될 수도 있는 금요일 당장의 업무에서 면제될 수 있는 등 소소하게나마 이점이 있었다. 처음 설때 토당(토요일 당직) 또는 공휴일 전날 당직 받고, 그 다음 설때 일당 또는 공휴일 당직 받고, 그 다음엔 기타 평일 당직 받다가 당직 기수 내에서 상위권에 들면 목당(금요일 근무취침+다음날 주말=2박 3일 쉴 수 있어서 가장 좋음) 받는 게 보통 순서였다.

 

휴일 당직이 안 좋은 이유가, 부대원들이 하루 종일 생활관에만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근무시간이었다. 평일 당직보다 8시간을 더 군복 갖춰 입고 당직사관과 단둘이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땐 당직 막내니 그냥 감내하고 섰다. 첫 당직이라 주변 선후임들이 과자들을 많이 챙겨줘서 그 낙으로 버텼다.

 

당직병은 생활관 담당 일일 상황병이었고, 당직사관 대신 전화 받는 병사였다. 부서에서 병사 부르는 전화가 오면 "000 병장님 사관실 전화 왔습니다"라고 마이크 방송해 주고, 기타 전화 오면 받아서 하라는 대로 하면 됐다. 그러면서 점호인원 보고서 보고 대대원들 이름이 다 적힌 칠판에 지금 있는 사람, 휴가로 없는 사람 업데이트한 다음 점호용 인원현황판에 정확하게 숫자를 매직으로 썼다. 당직 막내 땐 인원 틀리면 혼나겠지라는 생각에 최대한 정확하게 썼고, 당직 고참 땐 내가 틀리면 쪽팔리겠지라는 생각에 또 잘 썼던 것 같다. 아니면 직접 점호 도는 으뜸병사가 틀렸는데 눈감아준 걸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당직 서는 수 시간~십수 시간 동안 잠깐잠깐만 일어나는 일들이므로, 나머지 시간은 당직사관과 함께 사관실 내 티비를 보거나 책상에서 독서 또는 공부를 하면 됐다. 티비를 안 좋아하는 당직사관(스마트폰이 있는 당직사관)이라면 리모컨 주도권을 나에게 주는데, 그때 채널CGV, OCN 등등으로 섭렵한 영화들이 여럿 된다. 물론 공부도 독서도 하는 날 있었다! 타 부대 얘기를 들어보면 당직병에게도 업무용 컴퓨터가 주어졌다던데 우리 생활관 당직실엔 컴퓨터가 없었다. 따라서 그런 식으로라도 시간을 때워야 했다.

 

내가 정식 당직병이니 당직 견습병을 받아야 했는데, 오늘 나오기로 한 견습병이 안 오고 있었다. 명단에서 찾아내 불렀다. 후임 혼내는 걸 무서워하는 성격이라 "나야 상관 없는데 네가 아예 안 나오면 위에서 뭐라 하니까..."를 시전하여 "죄송합니다"를 받아냈다. 그 견습병 후임에게는 내가 견습병 때 그랬던 것처럼 매뉴얼을 내내 읽게 하고, 보기만 하라고 하고 모든 일을 내가 했다. 첫 견습병만 그런 소동이 있었고 이후 맞이한 견습병들은 무난하게 있다 갔다.

 

취침소등 이후 밤을 샐 때 당직사관은 금방 곯아떨어졌고, 당직병은 눈치 보다 티 안나게 자면 됐다. 물론 높으신 분 온다는 전갈을 받으면 얄짤없이 깨어 있어야 했다. 처음 한두 번 당직은 자는 것 자체가 눈치 보여서 말 그대로 밤을 샜다. 덕분에 근무취침 때 바로 숙면할 수 있었다.

 

서서히 상병 호봉이 쌓이며 당직병들 서열에서도 점차 상위로 올라가면서 좋은 요일 당직을 점하게 되고, 나의 근무 태도도 대범해졌다. 대범해졌다는 게 중간에 씻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자는 시간을 더 늘렸고, 공부를 더 적극적으로 했다는 얘기다...

 

밤을 새고...아니, 밤을 지내고 아침해가 밝고 부러운 그날 휴가자들과 먼저 가버리는 당직사관을 보낸 뒤 8시가 되면 당직실 문을 잠그면 일을 마칠 수 있다. 업계 용어로 이 당직 순번에서 내려오는 것을 '하번'이라고 부른다. 반대말은 '상번'이다. 상번과 하번 때는 부서별로 행정담당관들에게 일일이 보고를 쭉쭉쭉 드려야 한다. 생활관에서 거리가 좀 있는 대대본부까지 터덜터덜 걸어가서 마지막 보고를 마치면 드디어 내 근무취침, 자유시간이다. 생활관 건물 안에 웬만하면 나 혼자만 있게 된다.

 

일단 샤워로 간밤의 피로를 씻어내리고, 동기들이 모두 출근한 호실로 들어가 티비를 보거나 잠을 청한다. 당직실을 나올 때 보관함에서 핸드폰을 용감하게 빼돌렸다면, 이불 속에서 핸드폰을 해도 된다. 처음 근무취침을 할 때는 얼마 안 가 피곤해서 잠들었다. 그런데 당직잠이 점차 늘어서 그런지 근무취침을 경험할수록 피곤해지는 시기가 점차 늦춰졌고, 점심까지 깨어 있는 상태로 해결해야 되기까지 이르렀다. 체련복(그 군인 생활복) 차림으로 병사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됐으나, 그것마저 귀찮은 경우가 다반사여서 호실 내에 비축해둔 컵라면으로 때운다. 생활관 IPTV로 동기들과는 같이 보기 좀 그런(...그런 거 말고, 고전 명작 같은 거) 영화를 인트로부터 면발과 함께 음미하면 나름 쏠쏠한 재미를 느꼈다. 한 편 보고 누우면 2시쯤 됐는데 그때 눈 붙이면 얼마 안 가 퇴근한 동기들이 5시를 넘겨 들어왔다. 그럼 나의 휴식이 또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 보고 라면 먹고 하며 근무취침을 보내면 부족한 수면을 완전히 다 보상하지는 못한다. 그러면 어떠냐. 출근도 일도 안 했는데 감지덕지지.

 

병장이 되면서부터는 생활관과는 떨어진 당직사령실 건물에서 사령당직병을 섰다. 이것도 처음 설 때는 우왕좌왕했는데, 막상 가보니 당직병 자리에 일단 컴퓨터부터 있었고 그 컴퓨터 안에 당직병 행동 매뉴얼이 파일로 있었다. '이 엑셀파일에 인원수를 입력하고, 시간외근무 하시는 간부님 오면 타이머 찍어주시고, 자정 넘으면 안 오니까 자세요' 그게 사령병이 해야 하는 일 3가지였다. 생활관 당직병보다 압도적으로 쉬웠다. 병사보다 옆자리의 당직부관(하사)이 바쁘기는 훨씬 더 바빴다. 뒷자리의 당직사령(중위~대위)은 당직부관과 사령병에게 처음에 말 좀 시키다가 이내 무관심하거나, 무관심하다가 자리 비우는 척하며 자기 차로 들어가 자던가 둘 중 하나였다. 나는 인트라넷을 적극 활용하여 ebook도서관을 보거나, 야간 근무 서는 헌병 친구와 메일을 주고받거나, 내 책을 보거나, 심심하면 공부 좀 하다가 두 다리 쭉 펴고 잤다. 사령병은 심지어 하번시간도 7시로 생활관 당직병보다 1시간 빨랐다.

 

처음 사령당직을 서고 얼마 안 가 동기 후임에게 생활관 당직을 받게 되었다. 후임에게 왜 받았냐고? 목당을 준대서. 당직 다운그레이드였으나 관록의 병장이었던 나는 모든 당직업무를 대범하게, 속전속결로 진행하였다. 한 번 사령당직을 서고 나니까 생활관 당직 일이 손은 많이 갔을지라도 단순하게 느껴졌다. 당직사관과 함께 잠까지 시원하게 때리고 나니 금요일 당직취침과 이어지는 주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얘기에서 공군에 훈련 따윈 없다고 믿었다고 했는데, 전투부대였던 내 부대는 1년에 분기별로 최소 4번은 전투태세훈련을 했다. 말이 거창하지 요약하면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했다가 사이렌 울리면 방독면 쓰고 대기하다가(꼭 1번은 우리 부서에 폭탄이 떨어져서 대피와 화재진압 등을 해야 했다) 훈련종료 전날 야간에 보초 서는 훈련이었다. 훈련 경험과 짬밥이 동시에 쌓이면서 훈련도 할 만하다고 느낄 즈음 군생활 마지막 훈련이 사령부에서 검열 오는, 최고강도 훈련으로 잡혔다. 제발 그때 당직 걸려달라고, 근무취침으로 훈련 하루만이라도 빼고 싶다고 빌....지는 않아도 내심 바랬다. 그런데 진짜 사령당직이 됐다!

 

기쁨도 잠시 하필이면 그날이 야간훈련 날이었다. 그날 간부 포함 당직자 상번시간은 야간훈련 직후(시각 불명)로 옮겨졌다. 나는 야간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부서 후임과 작당을 했다. 상번을 하려면 상번시간인 오후 4시에 반장에게 보고를 드려야 했는데, 반장은 상번시간이 밤으로 미뤄진 걸 모를 테니 4시에 그냥 상번보고를 해버리고 부서를 나간 다음 생활관에서 시간을 때우다 야간훈련 종료 시 진짜 당직 상번을 하자는 거였다. 후임 당직날 다음이 내 당직날이니까 서로 행동을 똑같이 하자고 짠 거였다. 후임도 나도 무사히 반장을 속였다. 불 꺼진 생활관에 벌렁 누우니 생각보다 많은 인간들이 복도에 들이닥쳐서, 무단으로 훈련을 째는 내 심장이 여러 번 쫄깃쫄깃했다. 그러다 시간은 갔고, 야간훈련 종료 기지방송이 울려퍼질 때 나는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사령실 열쇠를 가지러 전대본부로, 철조망  바리케이드 사이로 내달렸다.

 

다음날 근무취침으로 1일치 훈련을 패스했다. 그때 IPTV로 본 영화는 히치콕의 '이창'. 그 훈련때 당직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당직은 서지 않았다. 당직 자리를 채울 수 있는 후임들이 너무 많아진 거였다. 갈수록 엄격해지는 병사 통제로 인해 당직병의 업무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고, 나와 동기들은 남은 두 달 가량을 그 복잡한 일처리로 당직병 후임들에게 신세를 졌다. 그리고 당직의 부재로 한층 느려진 두 달 가량을 어찌어찌 버틴 다음, 한참 당직 서는 중이고 서게 될 후임들을 뒤로하고 전역했다.

 

이상이다. 역시 전역은 일단 하고 보는 게 맞는 듯하다. 군생활이 완전히 끝난 시점, 마음속까지 자유로운 처지에서 군생활을 부담없이 돌아볼 수 있는 기분은 말년 때까지도 누려보지 못했다. 어떨 땐 '나에게 이런 시절이 있었나? 2년이 있었나?'처럼 삭제된 기억에 가깝다가도, 회상의 촉매제가 나오면 끊임없이 컨텐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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