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

5월 귀가 (2016)

머니코드17 2020. 3. 1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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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요새 내 일상담기에 철저해지고 있다. 이런 것까지 적다니..

그래도 귀중한 귀가기간인 이유는... 내신시험이 없는 평화적인 귀가거든.

(내신시험 마지막날, 귀가 하루전 : 전진!!!! 더 공부해라!! 카페인을 몸속으로 더 처넣어!! 박카스를 빨아!! 그냥 자지 마!! 지금부터 24시간 후엔 우린 집가서 야동을 보고순화했다 있을 거니까!!!!) 

 

5월 27일

00시~03시 : 난 침대에서 내 블로그 서로이웃인 PGD와 함께 노트북으로 이런저런 걸 하고 있었다. 건메이헴이라던가, 뷰티 인사이드에서 한효주 예쁜 장면을 노리면서 캡쳐했다던가.

이건 타이밍 잘못 맞춰서 찍힌 이범수

 

기숙사의 종소리가 아침 7시에 잠든 나를 걷어찼다. 몇시간 후에 나는 교실에 앉아 오전 수업을 듣고 있었다. 40분짜리 단축수업. 딱히 자투리 시간에 공부해야 할 이유를 못 느껴서 피곤한 김에 잤다. 일어나니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인문교양만화 '사기史記'8,9권이 놓여져 있어서 그걸 읽었다. 그걸 읽다가 졸려와서 또 잤다. 자고 일어났더니 교실이 애들 몇몇만 남겨 놓고 텅텅 비어 있었다. 결핵검사... 신병 수송차에 태우듯이 버스에 올려넣어서 흉부 엑스레이 촬영하면 끝이다.

그 후 그저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그저 그렇게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마티즈에 타고 그저 그런 느낌으로 대전에 왔다.

여담이지만 부고 귀가날만 되면 오시는 부모님들 차는 60~70%는 외제차다.

 

2014년 3월, 부고 입학 후 처음 귀가할 때는 그날이 학교 졸업날인 줄 알았는데.. 영원한 안식의, 평화의, 기쁨의, 환희의 땅 대전! 을 외쳤는데..

2016년 3학년이 된 지금은 공주에서 만나는 음식점 아주머님이 더 인정 많게 느껴진다.

 

저녁을 5시에 먹었다. 신장개업한 것처럼 보이는 모듬 돼지고기집에서. 반찬수가 적은 게 흠이었다. 고기는 직접 손질해서 올린다고 한다.

 

집에 와서 노트북으로 신해철 노래를 들었다. 엄마가 '복면가왕'의 '우리동네 음악대장'을 아냐고 해서 그랬다. 난 당연히 몰랐고 그래서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와 '날아라 병아리'를 들은 것이다.

 

굿바이~ 얄리~

어떻게 어린 시절의 병아리를 갖다가 그런 생각을... 나도 6살 땐가 엄마 몰래 병아리를 사서 키워서 죽인 적이 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 대충 잤다. 12시부터 1시까지 학교에서 가져온 고쟁이 미적1 등비급수와 도형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집에만 오면 뇌가 굳어서 1시간 동안 3개 풀어서 2개 답 쓰고 빡쳐서화나서 잤다.

 

5월 28일

 

오후 2시 40분에 일어났다. 이대로 이번 귀가는 깨끗이 패했다. 하루의 낮이 없어졌잖아.

계획한 대로는 하려고 4시경에 진잠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좆도너무 더워서 이 장소 저 장소 갈팡질팡하다가 별로 공부 못 했다. 게다가 해 지고 나서는 내 블로그 서로이웃인 nsj9461을 만나고 말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 첫친구도 서일고 교복을 입은 채(반바지가 귀여어어웠다)나타났다 "준우 여기서 뭐하는 거야! 대정동이 폭발했다고!(음성지원)". 오랜만에 만난 김에 셋이서 현피를 떴다.

도서관에 진득히 앉아서 학교에서 '이거 모의고사 2회분이니까 그냥 집에 가서 다 풀어와'하고 준 '수능의 7대함정 영어'를 다 풀고 싶었다. 그런데 4대 함정까지밖에 못 풀고 집으로 왔다. 나란 놈은....

 

그래서 집에서 마저 풀려고 했다. 그런데 TV에서 무한도전 토토가2 젝스키스편이 틀어지고 있었다. (녹화인가 다시보기인가) 아주 재애미이있어서 그걸 2편 내리 보고 그냥 그대로 잤다.

 

5월 29일

 

이대로 허망하게 귀가를 보내기 싫어서 엄마한테 '일찍 깨워주세요'하고 잤는데 그래도 일어나니 오전 9시였다.

아침을 먹으려고 거실 소파에 앉으니 도올 김용옥 선생이 현대적인 방송 세트장에서 고구려 패러다임 강의를 하며 열변을 토하고 계셨는데 너어무우 재미있어서 아침 먹으며 그걸 봤다.

 

그리고 노트북으로 이틀 동안 맴돌던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들었다. 유투브로 나무전갈과 녹색개미가 싸우는 걸 봤다. 개미(들)은 언제나 이긴다. 그리고 행성에 유기물을 뿌리고 그것이 번식하면 채취해 가는 은하 농작게임을 했다...

 

그리고 대충 여기 학교로 왔다. 학교에 온 지 2시간 안에 수능의 7대함정을 다 풀었다.

이제 내일이 밝으면 그 무시무시한, 수험생활 후기를 남기는 포스트 수험생들이 삶의 지표 중 하나로 삼는 6평이 3일 남아 있겠지?

하루 안에 최대한 빨리 정신을 차리고 공부해야 한다.

 

이번 귀가에 잠을 많이 자놔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정신을 잃은 것 같지도 않다...

 

2016년의 귀가는 언제나 평온하다.

욕정과 흥분에 들떠서 뭘 할까 누굴 만날까 미친듯이 선택하던 2014년도 아니고

어떤 고전을 읽으며 유식한 척을 할까 생각하고 자고감에 빠지던 2015년도 아닌

그저 학교로 돌아가면 다시 공부해야 하는 단순한 일상을 사는 2016년의 고3이 나니까.


단지 할 게 산더미처럼 많았을 뿐이지 자족했고 행복했다. 2016년을 떠올리면 웬만하면 좋은 기억만 난다. 유일하게 칭찬하고 싶은 어린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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