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
2020. 5. 12.
할 짓도 없는데(정확히는 뭘 하기엔 일광량이 부족하고 불을 켤 만큼 내 눈이 건강한 상태가 아닌데) 2년 전 오늘을 떠올려볼까? 꽤 재밌는 기억이다.
당시 나는 막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이었다. 이등병들 중에는 ‘이제부터 난 막내니까 뭐가 됐든 열심히 해보자’라는 건강한 생각을 하는 이등병이 있는 반면, ‘이제부터 난 막내니까 온 세상은 날 구원해야만 한다’라는 병든 생각을 하는 내가 있었다. 관심병사가 될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런 건 의식적으로 ‘생각해보는’ 정도로는 오를 수 없는 지위였다. 형식적인 중대장실 면담자리에서 “보급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고...”하면서 찡찡대는 제스처를 취한 게 전부였다. 말년이 되고 보급에 관심없어진 내가 놀러나가면 중대장은 그 일을 꺼내며 나를 깠을 수도 있다.
증거로도 활용 가능한 나의 고매한 정신적 궤적을 남겨 보자는 의도에서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드는 생각을 비망록 형식으로 기록했다. 사무실에 전화가 오면 막내인 내가 받아야 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왜 막내가 받고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똥 싸러 가는 척하며 화장실 칸에 앉아 수첩에 욕을 적기. 그런 식이었다. 부적응 스트레스가 누적될수록 내 수첩엔 읽기 껄끄러운 욕들이 점점 자주 출현하였다. 분명 그 수첩의 초기 목적은 저 앞의 상스러운 군인놈들보다 고매하며 예술에 조예가 깊은 고학력자 나의 정신을 보존하려는 것이었으리라...
이런 나의 수작을 아는 선임들은 내게 정기휴가를 보내줘야 하느라 가슴이 아렸다. ‘원래 이병은 선임이 먼저 꺼내기 전까진 휴가의 ㅎ자도 꺼내면 안 된다’라고 들은 건 있어서 선임이 알아서 내 휴가를 잡아주기만을 기다렸다. 후임을 정말 사랑하는 선임이라면 그랬겠으나 “넌 왜 네 껄 네가 못챙겨?”가 다였다. 보급특기는 병사가 쓰는 컴퓨터가 사무실에 많아서 인트라넷 개인 행정처리 같은 건 알아서 하는 구조긴 했다. 겨우 휴가 날짜를 잡으니 한창 창고를 뒤집어엎던 원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등 험난한 과정 끝 5월 11일~5월 13일 2박 3일 휴가를 얻어냈다. 2년 전 오늘이다.
사실 문자 그대로의 ‘첫’ 휴가는 아니었다. ‘둘째’ 휴가였다. 공군은 훈련소 6주를 수료하면 신병휴가를 보내주니까. 보통 그 훈련소 휴가는 첫 휴가로 쳐주지 않는 듯하다. 0번 휴가의 기분은 끝내줬다. 그리고 나는 이번 휴가에도 그 끝내줌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온 세상이 나를 구원할 준비를 끝마치도록 싸지방과 수신용 휴대폰 등으로 약속 2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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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공주에서 밤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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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곧장 청주로 직행하여 대학 동기들과 짝번후배 만나기
동년배보다 한 학기 빨리 입대한 공이 컸다.
출타하는 순간까지 나는 불안에 떨었다. 선임은커녕 바로 옆 침대에 (보직이동으로 같은방을 쓰게 된)상병이 있었는데 말을 걸지를 못해서 출타/복귀버스의 정확한 일시와 장소를 몰랐기 때문이다. 아버지 군번이었던 옆침대 상병님과는 지금도 친하게 연락한다. 6시에 군복 차림으로 보고를 못 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1시간마다 생체 시계를 깨워가며 뜬눈으로 지새운 끝에 5시에 씻기 시작하여 신변의 끝을 면할 수 있었다.
예상한 바였지만 자유로운 옷들을 입은 사회인들 사이에서 작대기 하나밖에 달리지 않은 군복이 약간 창피했다. 최대한 노련해 보이는 듯한(찌든) 표정을 지으며 그 쪽팔림을 모면하고자 했다. 중학교 때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소중해하던 동네에 군화를 디뎠을 때 감회가 남달랐으나 예상한 남다름이었다. 감동은 덜했지만 그만큼 내 예상이 맞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집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밤톨머리를 완벽히 은폐하기 위한 헌팅캡 착용도 잊지 않았다. 자칭 마음의 고향 공주로 떠났다. 그전에 빽다방에 들러 나에게 취식보행을 허할 사회인의 상징=아이스커피를 샀다.
지금이야 공주에 갈 일이 생기면 40분마다 있는 시외버스를 타거나 40분 동안 운전해서 가지만 그때는 꼭 충남대까지 오는 공주 버스 300번을 고집했다. 재수 끝에 명문대 새내기가 된 고등학교 친구들은 서울에서 나의 버스터콜을 받고 공주로 내려오고 있었고 나는 300번이 내달리는 구도로가 보여주는 금강을 보고 즐거워했다. 모두가 만났을 땐 저녁 6시쯤이었다. 나는 내가 공주에서 고학(高學. not 苦學)하던 시절의 모든 미각을 재현하고자 오는 길에 페북에서 언뜻 본 맘스터치 신메뉴(딥치즈 베이컨버거)까지 포함해 최대한 많은 먹거리들을 주문했고 자정에 이르도록 불닭볶음면과 피탕을 밀어넣었다. 그런 다음 우리들의 모교로 산보를 하자고 했다. 야자하는 불빛 앞에서 숨죽여 킬킬댔고 기숙사 앞까지 다가가 이방인 무드를 느꼈다. 파도 파도 즐거움만 나오는 이 날 군대에서 눈을 떴다는 사실이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곧 승리감으로 다가왔다. 전역날의 기분을 미리 느끼고 있었다. 혹은 훈련소 수료 휴가의 충실한 재현이었달까.
수면 시간 따위는 고려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바닥에 잠든 친구들의 몸을 넘어 숙소를 빠져나왔다. 비가 쏟아지길래 편의점에서 '젠틀해 보이는' 검정색 비닐우산을 샀다. 이번엔 두 명의 여성분을 만나는 자리였단 말이다. 공주-청주로의 시외버스는 마실 나가는 듯한 아줌마 할머니들이 꿰차고 있었다. 그들은 기사님과 이야기꽃을 피웠고 나는 없는 데이터를 긁으며 유튜브로 <빨간 맛-Motown Remix>를 들었다. 사회의 자유로움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그 음악이 도착해서 버거킹을 먹을 때까지 귀에 맴돌았다. 지금도 갓 휴가 나온 이등병에게 그의 대학시절 유행가를 들려주면 보통 사람보다 최소 눈물 한 방울은 더 흘릴 것이다. 터미널에서 접선 장소인 캠퍼스까지는 거리가 있었으나 난 '월급 30만원을 받은 몸'이었다. 휴가 첫날 엄마 손잡고 동네 은행에서 군적금을 들었다는 사실은 잊은 채 택시를 잡아탔다. 결론적으론 캠퍼스에서 도로 터미널로 버스를 타고 와야 했다. 버스 안에서 1학년 시절 학회장 선배 커플을 만났는데 그들이 묻는 말에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선배가 웃었다.
걸레짝 훈련복을 벗어던지고 모자로 나의 빡빡머리를 가린 후 세련된 옷차림으로 새터 때 만나지 못했던 짝번 후배에게 애슐리 정도 비싼 음식을 사준다. 이는 내가 훈련소에서 밤마다 그렸던 상상도의 제 3첩 정도였다. 2학년이 되자마자 군대를 가는 내게 네 짝번은 어떡하냐, 내가 챙겨줄게 등등의 예의차린 말들을 듣다 보니 그동안 밀린 챙김을 그만큼의 자본으로 대체...명분은 충분했다. 일본식 가정식을 후배와 남녀 동기 1명씩에게 사주긴 했다. 후배와 이런저런 얘기를 해봤다. 새내기 카페에 내가 주제넘게 남기고 간 자기소개글 덕분에 소재가 존재는 했다. 당시 나의 관심사(신해철, 군대, 폭넓은 음악취향 등)에 공감은 못 해줬지만 그를 감안했을 때 참 착한 친구였던 것 같다. 그 해 서로의 생일날까지 연락이 닿았다. 이젠 그 친구가 나보다 한 학년 높다.
참, 만나는 사람들마나 살쪘다는 말을 들었다. 그 뒤엔 "군대가 편한가봐~?"가 따라왔다. 부대를 갓 탈출한 이등병에게 그만한 모욕이 있을까? 스트레스를 핑계로 훈련소에서부터 밥을 한가득 퍼갔던 내 잘못도 있다. 탈출구가 없는 압제에 배까지 고팠다간 정신분열증에 걸려 버릴 것만 같았고 그러면 꿀빠는 자대로부터 멀어질 거란 메타인지가 나를 부여잡아 밥을 많이 푸게 했다. 덕분에 남들은 다 빠지는 수료 체중을 나는 10kg가 쪄서 왔다. 자대에선 BX의 은총이 내렸고 공주에선 피탕의 은총이 내렸고 메챠쿠챠 먹었다. 후배님에게 그런 나의 살찐 얼굴+헌팅캡이 당연히 가리지 못한 빡빡머리가 후배 기억 속의 마지막 내 모습이라니 수치다. 가만 있으면 중간이었다.
이후 집에 돌아와 보니 휴가가 반나절 남아 있었다. 현실이 짓누르는 무게에 겨우 숨을 쉬며 부대 복귀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는 시간을 알아내려 애썼다. 공군 갤러리도 찾아보고 페북 군산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려보기도 했다. 답은 없었고 '6시'라는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해 그 시간에 맞춰 군산터미널에 왔다. 터미널에 오고 나서야 집 나설 때 선임부사관에게 문자로 출발 보고 하는 것을 까먹고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문자를 쏴달라고 했다(위병소 보관함에 휴대폰 반입하는 법을 몰랐음). 폐급 될 준비가 완벽히 끝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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