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명예를 얻겠다고 대학교 지망란을 다 사범대 국어교육과로 채웠는지, 그때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생기부 장래희망란도 블라인드되는데 누가 어느 다른 대학교 썼는지 누가 알아준다고.
국어교육 일변도인 것 이외에도 지망하는 대학교의 클라스조차 다분히 감정적이었다. 순전히 "서울대에 원서 찔러봤다"라는 무용담을 생성하기 위해 서울대 학생부종합에 원서를 찔렀다. 그리고 내가 넣는 대학 중 서울대만 자기소개서를 요구했고 순전히 서울대만을 위해 대입용 자소서 기본폼을 쓰기 시작했다.
어차피 광탈한 수시의 자소서이므로 찾게 된다면 내용 전문을 공개할 의향이 충분히 있다. (지금 밖인데 집에 있는 옛노트북 백업용 usb에 있는 듯)
<아무도 안 궁금한 내 자소서 전투력>
생기부 세특과의 연관성 ★★★★☆
글솜씨 ★★★★★
분량 ★★★★★
컨텐츠 내실도 ★★☆☆☆
cf) 내신 ★☆☆☆☆
생기부 세특과의 연관성 : 최소한 자소서를 재미로 쓰려고는 안 했다. 학종은 내신을 블라인드까지는 아니더라도 크게 고려하지 않는 전형이고, 만에 하나 붙는다면 그야말로 잭팟이 터지는 거니까. 대입 자소서에 관해 많은 조사를 했다. 그리고 '생기부, 교내활동'에 집착할수록 자소서의 질이 높아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먼저 1차로 생기부 교과세특, 창의적 체험활동(자율활동, 진로활동, 봉사활동 교과 아닌데 많이 써야되는거)에 있는 거 없는 거 끌어다가('없는 거'라기보단 작은 거에 큰 의미부여) 공들여 빽빽이 채워넣고, 자소서에 그 활동들을 열거하고 눈물나는 의미부여로 살을 붙였다. 일종의 자소서 버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를 만드는 걸 목표로 했다. 입학사정관은 내 자소서와 생기부를 교차검증하면 10점 만점에 10점을 줬을 것이다.
글솜씨 : 글솜씨는 자신있었다. 중3때부터 기욤 뮈소, 더글라스 케네디 등 빌보드 얼터너티브 락스러운 소설책으로 발전시킨 '알록달록 수식어의' 글쓰기와 건조해진 성격+인문논술반 수강이 직간접적으로 영향 미친 '깔끔한' 글쓰기를 이제 막 둘 다 구사할 수 있었다. 자소서이니만큼 후자를 주로 따랐다. 4번 항목은 독서였는데 사서쌤이 지나가는 식으로 추천해준 <당신들의 천국>(이청준)을 칼 포퍼 반증가능성 담론원리까지 끌어오며 정성스럽게 써냈다. 1970년대쯤이었다면 나의 재주를 알아본 사서쌤이 사서나 대학조교로 스카우트시켜줬을 텐데. 포화사회였으므로 신임받는 학교 도서위원으로 끝났다.
분량 : 분량제한이 있었으므로 애초부터 지켰다. 이런 건 많이 써놨다가 줄여가는 게 딱이야!
컨텐츠 내실도 : 다른 별 4~5개짜리가 성공 요인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 항목은 내 자소서의 확실한 실패 원인. 나는 전형적인 '학교가 안 밀어준' 학종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어내신으로든 문학동아리 활동으로든 교무실 쌤들 눈에 띄지를 못했다. 서울대 학종 입장에선 다른 과목 내신은 허접해도 국어 내신만 쭉 1등급 달리기를 해야 뽑아줬을 거다. 하지만 공부 괴물들이 날고 기는 명문고에서 나는 내신 3등급도 힘겹게 맞는 중생이었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좋은 점만 극대화해서 본 결과 수시 자체에 쓸데없는 노력을 하였다. 그래도 교과서랑 수업내용에서 나오는 내신인데 내가 3년 내내 내신이 시원찮았던 원인은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과목, 모든 전형을 챙기려' 에너지를 분산시켰기 때문 같다(수능 정시로 최종합하는 역효과가 났다ㅋㅋㅋ). 국어와 독서 관련 교내대회에 할당된 에너지도 있어서 아낌 없이 쏟아부었지만 노하우 없는 오래된 정시빨 명문고가 급조한 이벤트성 대회들이라 화력이 딸렸고, 나한테 상을 몰아주지도 않았다. 자습까지 째가며 주말에 나갔던 '시 대회'들에서 목격한 고풍스런 시골 풍경만이 추억으로 남았다. 교내 동아리는 말할 것도 없이 인기 동아리 못 들어간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만드는 생기부용 동아리였다. 부적격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스타트업을 창업시켜준 느낌이랄까. 외부로 활동범위 넓히기, sns활용은 꿈도 못 꿨고 자기 프로젝트 안 해오는 애들이랑 페이스북 페이지에 저격글 올리면서 2년 내내 기싸움만 했다. 소논문 쓰는 RnE활동도 했는데 기싸움의 연장이었고 뭘 쓰는지도 모르는 채 지도교수가 쓰라는 거만 썼다. 자소서에서 나는 이 짓들을 '인생 최고의 값진 경험'이라고 했다.
내신 : 밑줄의 반복.
요즘은 고3 동생의 생기부 써주는 거나 도와주고 있다. 어차피 학생부 교과로 노멀한 취업위주 지방사립대 갈 건데 이런 애들한테까지 알아서 써오라고 했나 보다. 교육청 여러분 국어선생 많이 뽑으세요. 그래야 애들 생기부를 '교사가 직접 잘 써줄' 확률이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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