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독후감

최인훈, <회색인>

머니코드17 2020. 7. 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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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고2~고3 내내 학종 주요 커리어로 우려먹었던 책이다.

줄거리 요약

-1958, 비 내리는 가을 저녁에 독고준의 하숙집으로 그의 친구인 김학이 찾아온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학술 동인지 <갇힌 세대>에 실린 독고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들의 동인회에 가입하라는 김학과 한바탕 논란을 벌인 독고준은 김학을 보내고 나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공상과 상상이 혼합된 사고(思考)의 여행을 떠난다.

철조망 너머 그의 집과 사과밭, 부서진 학교, 월남(越南)한 아버지, 아무런 이유도 모르는 채 지도원 선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자신 등등 자신의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되는 이 복잡하고 정신없는 상상의 여행 속에서 독고 준은 소외되었던 자신, 아니 지금 현재까지도 소외되어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출처 http://www.seelotus.com/gojeon/hyeon-dae/soseol/choi-in-hun-hoisaegin.htm


-현실 앞에 나약하고 상념 많은 주인공 독고준은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 사회에서 지배적 지위를 잃은 지식인 계층을 대표한다.

 

-줄줄이 터져 나오는 머릿속 상념들은 한 번쯤 흘러나왔을 법한 생각들이며, 쾌감을 느끼게 해 준다. 마치 유식해진 나의 생각을 미리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녀의 방에 들어갈지 독고준의 고민 : 이전 독고준이 흠모하던 김순임은 목가적 사랑의 상징이었다. 순임과 같이 있던 곳에서 여러 강렬한 모험들을 지나 도착한 현호성의 집(=이유정과의 공간)은 새로운 인식으로 자신을 인도한다. 남한에서 끝없는 소외감을 느끼던 독고준은 새로운 무언가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에의 끌림 때문에 오래된 가치를 포기하고 새롭고 색깔이 명확한 것으로 넘어가는 일.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헤르만 헤세-데미안 두 세계 참조)

 

결국 독고준은 두 가지 문 중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는 하나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머지 한 문은 위층의 자기 침실 문이었겠지만, 김순임을 생각하던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호기심 : 대략 3년 전에 이런 구절을 보았다. ‘성취주의자는 미래의 노예로 살고, 쾌락주의자는 순간의 노예로 살고, 허무주의자는 과거의 노예로 산다. 행복은 산의 정상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고 산 주위를 배회하는 것도 아닌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이다. 

 

고등학교에서 행복이 중요한가 하는 의문 탓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결과는 모든 시간대의 노예였다. 

 

노예 상태에서 풀려나고 나니 나의 여러 부분들을 바꾸고 싶어졌다. 이미 가지고 있던 것과 새로 받아들인 것들이 지금은 조화로 발휘되는 것 같다. 요즘의 트렌드는 현실적이고 단편적이 되어 가는 듯하다. 미래의 노예가 되는 방법은 이미 잘 ()제도화 되어 있다고 본다. 세상에는 고등학교보다 더욱 폭넓은 사는 방식과 인식의 차원들이 존재한다. 미지의 영역도 있어서 그것을 파내는 자들이 주목받기도 한다.

 

성취주의, 쾌락주의, 허무주의 할 것 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사는 방식, 인식의 차원, 미지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연스럽고도 자유로운 세상살이를 하게 하는 것 같다. 원래 있던 세계의 질서를 바꾸는 행위라서 일종의 진보이다. 정지한 것은 언젠가는 노쇠하듯이, 나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필요하다.


흠... 1학년 때 현대문학개론 과제로 썼던 감상문인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최인훈 작가는 사변을 끊임없이 이어 나가는 문장이 특징인데, <광장>은 주제가 쉬워서 그렇다 쳐도 <회색인>은 말하려는 게 단순한 건지 대단한 걸 숨기고 있는 건지 일부러 못 알아채게끔 사색으로 회색 연막을 만들어 덮어놓았다. 아마 <회색인>하나만 남았더라면 최인훈은 한국의 제임스 조이스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나도 잘 모르겠고, 던져줄 테니까 여러분들이 알아서 끼워맞춰서 이해해보셈! ㅋㅋ'하는 심리로 대충 정한 주제로 흩뜨려 던져놓은 이 감상문은 매캐하기로는 <회색인>에 견줄 만하다. 그땐 그렇게 글을 쓰는 것을 스타일리쉬하다고 여겼다. 대학 교육에의 환상이 지워지기 전이라서 '현대문학에 전능한' 교수님이 나 대신 이해시켜 줄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했을 거다 아마. 교수님이 "오옷?!!(삐슝)"하고 대학교 학부 1학년생인 나를 따로 불러내 빈 강의실에서 애제자로 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 B+을 주셨다.

 

감상문 발표용으로 만든 ppt가 디자인이 지금 기준으로 매우 구렸다는 것도 선명히 기억난다. 아예 기본테마가 나을 정도로 어설프게 HY견고딕으로 강건한 척 꾸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