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고등학생 주인공 선윤재의 이야기를 다룬 청소년 소설이다.
우리는 흔히 남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한다. 그가 이기적인 이유는 아마도 '공감하지 못함'이라는 마음속 작용을 넘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에 옮겼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선윤재의 불통은 마음의 병처럼 서술된다. 마치 자신은 따뜻해지려 노력하지만 병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는 듯이.
나는 그 순수함을 비꼬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읽는 과정에서 나의 역사를 여러 번 되짚었다. 나 역시 공감이라는 것을 늦게 배운 인간이었기 때문에.
나의 공감력이 늦게 자란 이유를 지금은 파악할 수 있다. 굳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어울리지 않아도 충분히 '미디어'라는 장난감이 인터넷에 있었으니까. 컴퓨터 게임과 플래시 영상물 속의 캐릭터들은 놀이터에서 불량식품 먹으며 자전거와 인라인 타다가 맞짱이나 뜨는 또래들보다 매력적이었다. 결국 사내들의 무리에 참가하고 놀이터에서 놀기를 시작했지만 그때도 내가 고안한 규칙과 세계관을 설파했다.
이런 건강하지 못해 보이는 내 유년은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장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단점이었던 '공감능력의 결여'는 생활의 시행착오를 안겨주었다. 시행착오라는 이름의 훈련으로 내가 어느 정도 '득도'할 때까지 어른들은 "너는 왜 이렇게 사회성이 딸리냐?"라고 잔소리했다. 그래서 손원평이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나의 득도 순간으로도 마음속에 재구성되었다.
화제를 달리하여, 청소년소설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몬드'속의 무뚝뚝하던 주인공마저 결국 히로인과 사랑을 시작한다. 청소년의 중요한 성장 포인트가 연애라는 사실엔 동의한다. 하지만 그걸 관습으로 치부하고 파괴한 다음 소설의 아방가르드성을 얻는 시도도 역시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그런 발칙한 결과물도 청소년 소설에 포함된다면 앞으로 쓰일 청소년 소설들은 보다 다채로운 주류문학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 어떤 필요 때문에 급히 끄적인 듯한 노트를 청소하다가 발견했다. 그걸 좀 고쳐서 옮겨 본다. 불과 1년 전에 써진 원본인데도 상당히 난잡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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