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

휴가 레퍼토리

머니코드17 2020. 7. 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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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나갈 놈은 알아서 6시까지 부대 나갈 준비를 마쳐놓으라니! 기본적인 알람시계 정도는 제공해야 마땅치 않은가?

라고 내면의 무한복지주의자였던 이병인 나는 생각했다.

전자 손목시계의 희미한 알람소리조차 못 들을까봐 뜬눈으로 휴가 전날 밤을 지새웠다. 이 상태는 스톱워치 구입을 까먹은 말년까지 지속되어 3시간마다 잠에서 깨 시각을 확인하는 생체리듬을 대강 가지게 되었다. 첫 휴가날 새벽은 4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옆에서 자던 상병(!)이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거 아냐?"하고 속삭였다. 소름....

 

공군에 있으면서 대략 20번의 휴가를 나왔다. 길이는 2박 3일부터 7박 8일까지 다양했지만 아직 사회 진출이랄 게 없는 스물한~스물두 살이었기 때문에 다이내믹한 일 없이 비슷비슷하게 흘러갔다.

 

일단 기상이 울리는 6시 전에 자력으로 일어나기를 성공하면 (다행히 2년 동안 실패한 적은 없었다. 짬찌땐 혼날까봐 짬킹땐 못씻을까봐)세면장에서 간단하게 머리 감고 세안한다. 환풍기만이 돌아가는 텅 빈 세면장의 창문이 커서 겨울이면 시꺼멓고 여름이면 햇빛이 들이치는 광경은 인상깊다. 가까이에서 벽 하나로 구분된 미군 지역에서 GTG를 열심히 돌리는 소음이 전해지기도 했다. 얘네는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낮이나 밤이나 악천후에서나 열일한다.. 모처럼의 외출이니 면도도 한다. 면도날 좀 두둑이 챙겨올걸. 사회에서 면도날이 이렇게 터무니없이 비쌀 줄 몰랐다.

 

환복까지 했는데 6시까지 시간이 남았다면 호실 탁자에 앉아 pmp로 삼국지 만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었다. 동기들의 코골이를 피해 몇 곡 들으면 당직병이 기상방송 할 시간은 금방 찾아온다. 유연한 당직병은 당직실 시계가 5:58일때쯤 기상을 부르지만 그러지 못해도 딱히 짜증나진 않았다. 좁은 당직실 안에 금일 출타자들은 짬순으로 2열 종대로 정렬하고 당직사관 앞에서 "휴가 전 지시 받겠습니다"라고 휴가 보고를 한다. 그 자리에서 병사가 난동을 피우지 않는 한 휴가에 제한을 걸 권리는 없다는 걸 아는지 아무리 깐깐한 당직사관이라도 군말 없이 보내준다. 곧 당직병이 전날 담보로 맡겨놓은 휴가증들을 나눠준다.

 

평일에는 수송대에서 터미널행 셔틀버스를 제공한다. 겨울에는 추위를 여름에는 끕끕함을 버티며 창고 앞에 서 있다가 오는 버스를 타면 된다. 주말에는 자력으로 부대 정문 밖까지 나가야 한다. 정문부터 터미널까지도 한 거리 하므로 그것도 자력구제다.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역시 답은 애초에 평일출타를 하는 거란 걸 머지않아 깨달았다.

 

수송대 셔틀버스는 간부 출근버스도 겸하기에 돌고 돌아 터미널에 우리를 내려준다. 그럼 나는 곧장 터미널로 가 7시 20분발 집으로 가는 버스를 끊는다. 짬이 쌓이고 나선 가끔 후급증도 써먹었다. 허름한 터미널의 쥐똥만한 대합실에 앉아 새벽의 피곤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유성행 버스를 탈 시간이 다가온다. 가끔 던킨도너츠 또는 길건너 편의점에서 아침식사를 했지만 나중엔 돈이 아까워서 걸렀다.

 

군복 차림의 모자를 벗어던진 나를 실은 버스가 후진으로 출발하기 시작하면 이어폰을 꼽고 그때 한창 들었던 임재범의 발라드를 듣는다. 그땐 노래방 실력자랑용으로 발라드를 참 많이 들었다. 노래방 갔다 하면 죽어버리는 세상이 된 지금은 내 핸드폰 용량만 차지하고 있지만. 휴가 땐 아니고 자격증 시험을 보러 버스를 탈 때 복도 건너편 좌석에 국가유공자 모자를 쓰신 참전용사를 본 적이 있다. 서로 아무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난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엄청나게 찔렸다. 'sns에서 본 썰처럼 내릴 때 경례해야 하나?' 우물쭈물대다가 도착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갈길을 갔다.

 

마찬가지로 번잡한 터미널에 내리면 휴가를 나오는 나를 죽이지 않고 무사히 데려다 준 버스기사께 1초 동안 감사하는 시간을 일단 갖는다. 그런 다음 버스나 시간 맞으면 데리러 오는 엄빠 차를 타고 집이 있는 동네로 진입한다. 집에 오면 군복을 벗어던지고 늦은 점심밥을 먹거나 마트 장 보는 걸 돕거나 한다.

 

곧 미리 잡아놨거나 잡힐 예정인 술약속에 참석한다. 술약속이니 인싸처럼 보이겠지만 어차피 휴가 맞춰 나온 동네 군인 친구거나 공익 친구다. 2년 동안 비슷한 몇 군데 술집을 전전하며 비슷한 웃긴 얘기를 해 왔고 비싼 술값을 내 왔다. 전역과 동시에 그곳에서 술자리하는 재미는 급격히 떨어졌다. 지금껏 해 온 군생활 사슬자랑, 하지도 않은 일 할 것처럼 허풍떨기 등등이 전역 후 내가 일궈낸 joy에 전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아쉽게도' 피시방에서 로스트아크를 하며 보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족과 싸울 확룰만 늘어난다는 법칙을 너무 잘 학습한 탓이었을까. 특별한 일정이 없는 휴가날은 기본 포지션이 동네 지하 피시방의 기둥에 가려진 옆자리가 없는 독석에 앉아 캐릭터를 앞에 놓고 깍지를 끼며 작전참모처럼 고민하였다. 이 어여쁜 아르카나의 진로에 대해... 마찬가지로 전역하고 한 번도 로스트아크를 건들지 않았다. 피시방 자체를 가지 않았다. 그래도 군생활 절반의 사는 낙을 책임져준 게임인지라 꽤 자주 생각나긴 한다. '나를 로그인하게 할 사유'가 그 게임에 아직 없어서 그렇지... 점핑권 한 번만 더 뿌려도 그날 바로 갈텐데 말이지?

 

술과 로스트아크, 시내조차 나가지 않고 이 두 가지만 해내도 본전은 뽑은 휴가였다. 1휴가 1여행 등등 거진 6주마다 오는 휴가마다 하나뿐인 이벤트가 벌어져야 한다는 지론을 지켜내는 동료 전우를 보면 그 에너지가 놀라웠다. 도태되지 않으려는 노력은 생활관 독서실과 자격증 시험장에서 '알짜배기로' 충분히 했다. 병사 휴대폰 사용 개시로 더 많은 정보를 영내로 끌어올 수 있게 된 이후론 충분하다 못해 군생활이 몽롱해졌다. 잦은 면회와 언제든지 가능한 휴가 약속으로 행복감을 북돋아줄 애인과 친절한 지인도 없었던 나는 차라리 재충전으로서의 휴가로 그 의미를 택한 듯하다. 비교적 외로운 군생활이었지만 그때뿐이었다. 난 덜 외로워질 준비를 끝냈고 그걸 증명할 기회가 나를 찾아오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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