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6

군생활 중 한 자기계발

내가 이만큼이나 성실히 살았다고 자랑할 의도는 없다. 성실해봤자 지금이 더하므로. 일례로 지금 하는 건 비전이랄 게 있지만 그땐 순전히 부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내지 포상휴가를 따기 위해서가 자기계발의 주된 목적이었다. 한낱 근무시간 휴게실에 짱박혀서 하는 독서도 분주하지만 쓸데없게 돌아가는 우리 군의 군수체제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해 주었다. 1. 한국어문회 한자검정 3급 (2019. 1~2) 개인적 욕심으로 이름 있는 검정기관의 급수를 따고 싶었다. ybm 상무한검에서 운좋게 1급을 얻어냈지만 자랑하기 쪽팔렸다. 이걸 딴다고 군에서 딱히 포상이나 가점을 준 기억은 안 난다. 1달쯤 잡고 공부했는데 정말 가망이 없어서 시험 보러 외출하는 날 '째고 그냥 밖에서 시간때우다 올까, 그냥 칠까'를 생활관 ..

기록문학 2020.08.22

군차(軍茶) 변천사

내 군생활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중소기업 잡부'였다. 병사들이 저마다 컴퓨터 하나씩 끼고 사무업무(보급 전산)를 보면서도, 필요하면 밖으로 나가 상하차부터 창고 공사까지 근육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서 특별한 기술(용접, 목수 등) 없이 그저 필요할 때마다 나르기만 하는 잡부와 유사한 포지션이다. 건설 잡부였기 때문에 중간마다 종이컵 커피로 휴식타임 때릴 시간도 있었다. 오늘은 그 휴식타임에 뭘 마셨는지 변천사를 알아보고자 한다. 커피믹스 일이병이 눈치 보면서 마실 수 있는 것의 시작은 당연히 휴게실에 비치된 커피믹스부터였다. 가장 제너럴한 '노란색'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가 가장 많이 보였다. 공사 인부아저씨가 사회에서 들고 온 '하얀색' 맥심 화이트골드를 몰래 하나 먹어본 적이 있다...

기록문학 2020.07.23

휴가 레퍼토리

휴가 나갈 놈은 알아서 6시까지 부대 나갈 준비를 마쳐놓으라니! 기본적인 알람시계 정도는 제공해야 마땅치 않은가? 라고 내면의 무한복지주의자였던 이병인 나는 생각했다. 전자 손목시계의 희미한 알람소리조차 못 들을까봐 뜬눈으로 휴가 전날 밤을 지새웠다. 이 상태는 스톱워치 구입을 까먹은 말년까지 지속되어 3시간마다 잠에서 깨 시각을 확인하는 생체리듬을 대강 가지게 되었다. 첫 휴가날 새벽은 4시에 침대에서 일어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옆에서 자던 상병(!)이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거 아냐?"하고 속삭였다. 소름.... 공군에 있으면서 대략 20번의 휴가를 나왔다. 길이는 2박 3일부터 7박 8일까지 다양했지만 아직 사회 진출이랄 게 없는 스물한~스물두 살이었기 때문에 다이내믹한 일 없이 비슷비슷하게..

기록문학 2020.07.11

컴퓨터 활용

독서실 오픈 알바를 하다가 손님 자리등록용 노트북이 인터넷 먹통인 걸 발견했다. 손에 청소기와 소독걸레를 들고 뒤로는 똥이 마려운 길이었으므로 대충 껐다 켜고 와도 해결이 안 됐다. 분명 와이파이는 빵빵하게 터지고 있는 걸 내 핸드폰으로 확인했으니 문제는 노트북이 인터넷 감지 기능이 아예 없는 거랑 다름없는 상태라는 걸 화장실에서 깨달았다. fn+무선 버튼을 눌러 와이파이 잠금을 해제하니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별 거 아닌 일이었지만 내가 조금만 더 컴맹이었다면 그 층으로 들어오는 모든 손님의 좌석배정을 내가 대신 맡아주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인수인계사항에 오바를 하겠지. "손님용 출입시스템 노트북이 인터넷을 아예 못 잡습니다. 수리 필요합니다." ㅋㅋ 문과 집단에서 그나마 컴퓨터를 잘 '활용'한다..

기록문학 2020.06.30

특기학교의 기억 #1

위는 내가 공군 훈련소를 마치고 특기학교로 옮겨진 때에 맞추어, 친구가 내 계정을 받고 피드에 올린 '생존신고&인편 좌표'이다. 내가 무슨 특기학교를 갔고, 특기학교가 뭘 하는 곳인지는 저 메시지에 써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메시지 덕분에 인편을 생각보다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인편도 포함해서... 그런데 그 편지는 은근 나를 무시하는 어조여서 딱히 답례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은 오프라인으로 한번 만나서 얼마나 얌전해졌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인편은 인편이고, 현재는 코로나로 얼룩진 4월이다. 4월인 김에 특기학교에 소속되었던 그 해 4월의 첫 2주를 회고해보고자 한다. 봄비가 잘 안 내려서 지금 벚꽃이 꽤 길게 피어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특기학교에서 열 맞춰 걸..

기록문학 2020.06.14

당직

미입대자 시점에서 공군은 몸이 많이 편해 보였다. 혹한기니 유격이니 없다고 해도 그건 훈련 자체가 없다는 말로 일단 들렸고, 짜증나기로 사회에 널리 알려진 '불침번'제도도 없다고 들었다. 그럼 비행기 조종도 안하는 병사가 공군에서 하는 게 뭐가 있지? 정말 새 쫓고 활주로 닦기뿐? 나는 "군생활 내내 ~~만 하다(주로 일상적인 한 가지 일. 커피타기, 화단에 물주기 등) 전역했다"라는 군생활 후기를 참 좋아했고, 롤모델로 삼았다. '일신의 안위'만을 원했기 때문에 3군 중 공군에 입대한 것이다. 공군 출신들은 다 아시겠지만 유격 있었고, 공군에서도 병사가 할 일은 차고 넘쳤다. 24시간 감시업무가 아닌 이상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면 예외 없이 한 달에 한두번 꼴로 당직을 서야 했다. 상병을 달자마자 섰던 ..

기록문학 2020.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