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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뒤늦게 본 <1917> : 집단적 상황 속 개인의 체험

머니코드17 2020. 4. 1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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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1917은 지난 겨울 꼭 극장가서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그걸 허락해주지 않았고... 생각해보면 확진자가 100명 아래였던 2월 초~중순에 꽤 많은 외출을 포기한 것 같다. 그리고 10000명 초과인 4월 현재 꽃놀이 붐은 시작되었지...

다시 1917로 돌아와서, 일과 때문에 밤이 늦었다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똑같이' 늦었는데도 기어이 보고 잤다. 물론 집에서 안전하게^^

대략적인 시놉시스(독일군의 함정이니, 진격을 막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 제작비화(감독 샘 멘데스의 참전군인 할아버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함)만 알고 배우는 모르는 상태였다.

형들이 거기서 왜 나와요...?

주연배우를 원테이크(처럼 보이는) 기법으로 추적하는 영화다 보니 저 두 높으신 분들의 비중은 손톱만하지만, 특히 베네딕트 아재는 짧은 분량 안에 이미지와 어울리는 대사들을 쏟아놓고 나가셨다.

이제 인상깊은 장면 이야기를 좀 할까...

- 그 밤에 조명탄 계속 터지는 장면 : 벽과 기둥만 남은 폐허 마을의 그림자들이 짙게 드리워지면서 그 시대의 주요 색감인 주광색과 검은색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동시대 독일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떠올랐다. 그 영화의 음산한 분위기와 전체적인 색감도 좀 비슷하다.

- 체리나무 잎과 함께 조용히 떠내려가는 장면 :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같은 작품에서나 보던 평온하고 목가적인 장면이 그 작가가 집필하면서 주로 떠올린 풍경이 아니었나 싶다. 이 장면 직후 이 영화의 유일한 노래OST가 나온다.

- 목적지에 다 왔더니 진격 준비하고 있는 병사들 : 타부대에 왔더니 한쪽에선 구령 넣고 있고 한쪽에선 참호 밖으로 뛰어나갈 준비자세 하고 있고... 이 낮섬은 사시사철 안락한 군생활을 하지 않은 군필자라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첫 총격전 :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위협하는 첫 총성은 꽤 늦게 울린다. 일반적인 전쟁영화가 대충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아는 관객은 '총은 언제? 탕은 언제?'하는 마음이 한쪽에서는 들었을 것이다. 너무 일찍 울리지 않길 바라면서도. 반드시 울리기는 해야 됐던 '첫 총성'을 샘 멘데스 매우 잘 처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시점을 따라가는 원테이크 기법 덕분에, 저격수의 단 한 발이 바로 옆을 비껴갔으면서도 그 총을 쏘는 적을 보여주지 않고,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전혀 감 잡을 수 없고 주위의 엄폐물로 기어들어가야만 하는, 실제로 저격당하는 듯한 상황을 관객이 체험하게 만들었다.

총격전을 차치하고서라도, <1917>은 기존 전쟁 영화의 통념(클리셰)을 '디테일'하게 비껴갔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법한데 그렇지 않은 광경의 연속이다. 전쟁이라는 집단의 상황 속에서 개인의 여정은 또 다른 성격일 수 있다는 점을, 철저히 개인의 시점에 천착한 원테이크 기법으로 녹여냈다. '시간이 적이다(TIME IS ENEMY)'라는 틀릴 수도 있는 주제를 걸어놓고, 맞게 했다.

<1917>은 전쟁 영화라기보다 원테이크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버드맨>이 비슷하게 그랬던 것처럼. 

*정말로 '원테이크'로 씬을 전혀 나누지 않고 <1917>을 다 찍은 건 아니고,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으로 중간에 암전되는 장면, 바윗돌에 잠시 카메라가 가리는 장면 등 찰나의 가림막을 이용해 씬을 나눈 것이다.

 

생각나는 대로 짬짬이 써서 리뷰가 되게 그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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