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빼 재질의 바지와 일부러 오버로 산 후리스를 실내복으로 항상 입는다. 스타일을 구기지 않으면서도(당장 줌을 키고 강의를 들어도 문제없을 정도) 이만큼 편한 옷이 없다. 그전까진 2009년부터 입던 다 쭈그러든 후드티, 허리 고무줄이 과하게 짱짱해 허리에 항상 자국이 남는 추리닝을 착용했다. 후드티가 잠옷으로 불리한 게 머리 안 감은 날 편리한 후드는 누울 땐 그저 목 뒤에 뭉쳐진 천 쪼가리이기 때문이다. 집업으로 입고 벗기 편하며 뒤에 모자 없는 후리스가 가장 낫다. 군대에서 터득한 지식이다. 허리 고무줄은 아마 학창시절 사진 속의 내 얼굴이 달덩이였던 이유가 혈액순환에 문제를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잠은 또 어떻게 잤는가? 지쳐 쓰러질 떄까지 비생산적인 공상을 반복했다. 가뜩이나 운동 따위 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잠은 항상 안 왔는데 어둠 속에서 눈을 질끈 감아봤자 말똥말똥해진다는 사실을 이론상 알면서도, 실천한다는 사실 자체가 귀찮아 (습관을 그만두는) 실천을 못했다. 노트에 만화를 그리는 상상력엔 조금은 도움을 주었겠지만 내 처지를 개선시키는 덴 하등 도움을 주지 못했다. 지금은 넷플릭스를 보고 싶어 취침시간을 앞당기는 지경이다. 외국 드라마는 쓸데없는 OST가 거의 안 깔리는지라, 적막 속에서 자막이 더 이상 안 읽히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저 노트북을 덮고 구석에 밀어넣기만 하면 그날 하루가 끝난다. 그리고 그 하루의 끝은 내가 가장 슬기롭다고 판결 내린 시간대인 아침을 빨리 가져다준다. 1)
이렇듯 내가 날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조건의 매트릭스가 요구된다. 매일을 패배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호불호를 명확히 파악하는 일쯤은 끝내놨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단계로 실천해야 하는 일이 '라이프스타일의 주도권'을 쥐는 일이다. 내가 입었을 때 편한 옷, 아침마다 먹었으면 좋겠는 음식과 커피, 가장 편안하게 잠들기 직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면 그것을 무슨 방법이든 써서 손에 넣어야 한다. 집에 가족도 룸메도 있는데 뭔 무책임한 소리냐 싶겠지만 그건 같이 사는 사람과 어떤 관계를 추구하느냐의 기질적 문제를 같이 고려할 일이라고 본다. 나는 전형적인 ISTP스러운 "나는 나, 너는 너", 무간섭주의를 추구한다. 24시간 생리에 가장 밀착한 부분을 해결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같이 데리고 다닐 때 날 더 빛나게 해주는 사람, 자신감을 줄 수 있는 옷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지.
왜 하루라도 더 먼저 라이프스타일이느니 주도권이니 '적극 행동'하지 못했을까? "진정한 실력자는 환경에 굴하지 않는다."는 만화적 겉멋(..) 내지는 하루하루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거나 비굴함이라거나를 느끼며 사는 게 정상적인 일상이라고 믿어왔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학창시절에서 배우는 문학작품에서 그런 것만 골라 배웠던 것 같다. 2) 왜 난 학교에서 패배주의 사상만을 키워서 졸업했을까? 선생이 되면 신세대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정말로 학교에서 그런 걸 가르치는 것 같느냐고. 내가 내 10대~20대 초반을 청춘 한번 누려보지 못한 방구석 겁쟁이로 낭비한 책임이 학교에 있는지, 나에게 있는지 파악해보고 싶다.3)
1) 인터넷에 쳐보면 건강하게 잠드는 방법 수십 가지가 나오고, 넷플릭스는 그 중 하위권에나 있을 법하지만 만족하며 잠들고 있다. "난 가족과 직업이 있고, 실제로 행복함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는 지구 평면설 믿는 미국인 스럽나... 하여튼 드라마나 책 속에 들어가는 일은 내 취향이 존중되는 이상세계와의 접촉과 다름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안정감을 느끼고, 잠듦에 있어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게=롸끈한 게 아닌가 싶다. 같은 이유로 대중가요를 들으며 자는 건 무조건 3시까지 나를 불안하게 한다. 언젠가 대중가요를 하고 싶은데 시궁창인 현실이 어둠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나랑 동갑인 영앤리치를 쳐다보는 일과 비슷하다.
2) 이상이라거나 양반전이라거나... 인과관계의 법칙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과목인 한국사에서조차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현실에 이상을 실현해보려 발버둥치는 저항을 미화한 민족주의적 서술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요즘은 문재인 정부가 그 이상주의 덕목을 매우 충직히 실천하고 있다. 거의 "김구 선생님 저희가 본받겠습니다!"수준.
3) 내가 생각하는 청춘이란 21살 여대생급 청춘이다. 봄의 소개팅, 여름방학의 유럽여행에서 팔 높이 뻗고 인생샷, 가을의 호수공원, 겨울의 파자마 파티. 수능 끝나고 기숙사에서 술 한번 잘못 까먹었다가 깡촌의 대학교 mt에서까지 근엄하게 "금주"를 외친 기억, 그런 지 1년 만에 군대로 들어가 '인생을 배우게 된' 일을 청춘이라고 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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