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

특기학교의 기억 #1

머니코드17 2020. 6. 1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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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내가 공군 훈련소를 마치고 특기학교로 옮겨진 때에 맞추어, 친구가 내 계정을 받고 피드에 올린 '생존신고&인편 좌표'이다. 내가 무슨 특기학교를 갔고, 특기학교가 뭘 하는 곳인지는 저 메시지에 써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메시지 덕분에 인편을 생각보다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인편도 포함해서... 그런데 그 편지는 은근 나를 무시하는 어조여서 딱히 답례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은 오프라인으로 한번 만나서 얼마나 얌전해졌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인편은 인편이고, 현재는 코로나로 얼룩진 4월이다. 4월인 김에 특기학교에 소속되었던 그 해 4월의 첫 2주를 회고해보고자 한다. 봄비가 잘 안 내려서 지금 벚꽃이 꽤 길게 피어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특기학교에서 열 맞춰 걸으며 질리도록 보았던 벚꽃들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헬 자대로 가게 될까봐 항상 안절부절 못했는데, 진주의 평온한 하늘과 벚꽃들은 그런 내 마음을 위로해주기는 커녕 화려하게 놀리는 듯했다. 그러한 나의 담당일진들과 함께하는 2주는 군생활 전체를 놓고 보면 엑스트라이지만 모든 날이 가시방석이었다. 그런 날들을 한번 이야기해보겠다.

 

육군으로 치면 후반기교육을 받는 군수 2학교와의 인연은 훈련소 마지막 날 식사이동 시 점호장을 '발을 굴려서 통과'하는 경로에 배정받은 특기별로 특기학교 안내 종이를 가져가라고 한 데서 시작한다. 점호장 여기저기에 배치된 조교들은 식사를 마치고 2열 종대로 돌아오는 훈련병들에게 "점호장 밟았으면 발 굴려"를 연발했고, 훈련병들은 자기 특기학교 종이 뭉치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냅다 달려가 안내서를 받아들고 다시 냅다 생활관 건물로 달려가야 했다. 저녁식사 마치고였으니 3월의 해질녘에 (빡빡이의)어두운 물체들이 그렇게 사방으로 달려나갔으니 좀 웃긴 그림이긴 하다. 나는 항공기재보급(지금은 장비물자보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특기였으므로 그 특기교육을 담당하는 군수 2학교 안내서를 집어들어, 생활관 입구로 냅다 발을 굴려 달렸다... 나는 이내 그 안내서를 잃어버렸고 운전 특기를 받은 호실 동기에게 카톡해 촬영본을 받았다. 별건 없었고 준비물 등이 적혀 있었다.

 

당시엔 군수 1학교, 군수 2학교가 무슨 차이인지, 왜 군수학교를 2개나 두는지 이유를 몰랐다.

(군수 1학교 : 기존 정비학교, 항공기 정비특기 교육, 군수 2학교 : 수송, 급양, 보급 같은 병참 특기 교육

그런 주제에 나는 내가 받은 '군수'라는 특기명과 정체성에 대해 깊이 사유하였다. 그 사유는 '항공기재보급'이란 특기를 최종적으로 받고 난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스타2에선 군수공장에서 탱크를 뽑는데 무진장 힘든 거겠지, 훈련소에서 '군수근무 훈련병'은 실은 수십 인분의 이불과 수통을 나르는데 '꿀수'라고 놀림받았지, 공군 특기마크는 운전이든 급양이든 보급이든 다 같은 군수 특기마크로 통일돼있지, 이렇듯 '군수'는 군대에서 뭔가 크고 아름다운 물건들과 관련된 단어인 듯한데 군수특기인 보급이 왜 꿀보직인지.... 무전공이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꿀보직이 보급이라는 소문만 믿고 기를 써서 보급특기를 받아내긴 했다만. 나의 예상이 틀어지면, 꿀 빠는 군생활을 위한 나의 프로젝트가 바로 폐기되는 거였다. 수만 군인들의 의지가 반영된 군대 업무의 역학관계가 나에게만 안락하고 따스한 봄 햇살로 굴절되어 다가오기를 특기마크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서 삭발 상태로 기도했다.

 

2.3초의 수료외박이 지나가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교육사령부 진입로에서 아빠 차에서 내렸다. 볼펜, 수첩, 텀블러, 야광밴드, 세면도구 등 준비물이 가득 담긴 에코백을 둘러맨 채,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이등병들이 저마다 이별하며 겉으론 쾌활해 보이는 발걸음을 무작정 따라갔다. 나도 '군부대'란 곳에 어떤 식으로 혼자 들어가는 지는 구체적으로 몰라 그냥 그들을 따라갔으므로 '무작정'이었다. 후문? 제2정문?에 가까워지니 공포의 빨간 모자들이 '훈련병이었던 것들'을 통제하며 들여보내고 있었다. 필승! 용무신청을 해야 하나? 앞 전우는 그냥 다가갔는데? 어쩔 줄 몰라하며 가까이 가자 그 빨모는 아무 공격도 하지 않고 나를 부대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2열 종대? 4열 종대?로 모아서 강당으로 이동하라는 지시와 함께. 음색도 엄청나게 인자해져 있었다. 그냥 특기학교로 보내지기까지 마주친 모든 조교들이 존칭을 쓰고, 진정되어 있었다. 신분의 변화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태도도 한순간에 바꾸어야 되는, 군인정신이란 것이 꽤 흥미로웠다. 나는 그렇게 꽤 존중받으며 특기학교 생활을 해 나갈 줄 알았다. 덕분에 곧 만난 파란 모자의 군수 2학교 조교들과 소대장급 간부들이 매우 개념없게 비춰졌다.

 

병사가 소속을 옮기는 모습은 '따플백'을 둘러매고 이리저리 다니는 게 정석이다. 기본군사훈련은 진주에서, 특기교육은 대구에서 받는 방공포교 교육생은 몸의 앞뒤로 그것들을 둘러매고 민간지역으로 나와 기차를 탄다. 다행히(?) 난 방공포 특기가 아니어서 그런 치욕...은 주어지지 않았고, 대신 같은 교육사령부 내 기본군사훈련단 지역에서 군수2학교 지역까지를 무거운 따플백을 맨 채 줄지어 갔다. 집에서 가져온 에코백까지 합해 난 3개의 커다란 자루를 한번에 들어야 했다. 어둑어둑해져서 군수 2학교에 도착하자, 특기학교 조교들은 다시 나와 동기들을 개차반처럼 대했다. 의류대 안에 꽉꽉 눌러담긴 짐은 넣을 때도 꺼내서 정리할 때도 빡침을 유발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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