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만 말하고 다니다 보니
경험이든 사고실험이든,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내린 결론들이 있다. 주로 미래에 대한 결정이라든가 인생관이 그렇다. 복잡한 도출 과정을 거쳤으나 결론 자체는 대부분 단순하다.
순간 순간에 집중해야 되는 사회적 상황에서 난 일장연설을 지양하기 때문에, 맥락이 닿았을 때 '결론만으로' 내 입장을 내놓곤 한다. 문제제기를 위한 문제제기를 좋아하는 자칭 공능제, 쌈닭들은 내 결론을 "착해빠졌다" "허황됐다"라고 평가절하한다. 내가 결론을 내릴 때 관여시켰던 것보다 낮은 가치판단 단계에서.
같은 세월 혹은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 가치판단의 성숙도가 나보다 낮다는 것을 괘씸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수십 년이라도 단조롭게 살아왔으면 정신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으니까.
성숙도를 올리기 위해, 완벽하게 질 높은 교육 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직접 방황이 필요하다(전자는 개꿈이나 다름없으므로 후자가 주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적어도 열등감의 염소와 야망의 똥오줌이 적절히 섞여 떠다니는 수영장에서 어푸어푸 한 번은 하고 와야 된다. 그 자리에서 "가치판단의 성숙도를 올려서 내 주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할 수 없다.
내가 그 수영장 속에서 잠수한 채 고뇌하는 모습을 365일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나를 '조용한 생각쟁이' '(중세적 의미는 집어치우고 21세기 수사적 표현에 가까운)음유시인'으로 여길 것이다. 경험상 그런 태도는 사회적 교류와 기회의 창출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광대가 풍자하듯, 나는 결론만 말하고 한량처럼 살아간다. 놀림당해도 괜찮다. 어차피 실제 행동해서 이루는 사람은 나고, '밤의 대통령'도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