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썰 #3 : 재수학원 예비고3 윈터스쿨

이번엔 정시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윈터스쿨 시기를 반추하고자 한다.
망해가는 지방 구도심에 처박힌 우리 학교 동급생들은 충청도 말씨를 더듬거리는 화학 선생을 앞에 세워놓고 독서대로는 인강 교재 문제를 풀어가며 사교육 엑셀러레이터를 열심히 밟고 있었다.
나는 내신과 정시(모의고사) 모두 약한 상태였으므로 그들과 같은 수준이 되려면 그들이 받는 사교육 양을 따라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많이들 들으러 간 사설 재수학원 윈터스쿨을 끊었다. 보통 서울이나 양지로 기숙하러 갔지만 선은 지키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과 타협해 본가 지역 시내의 대형 재수학원에서 통학하기로 했다.
아침 7시쯤에 집을 나섰던 것 같은데 겨울 기준에선 칼바람이 부는 동트기 전 꼭두새벽이었다. 각종 은행과 피부과 간판들이 늘어선 신도심에 버스를 내려서 좀 걸어가면 상가건물 한 채를 통째로 쓰는 재수학원에 다다랐다. 비슷한 수준으로 편성된 반에 들어가면 명문고의 동급생보다는 훨씬 심성이 착한 편이었던 본가 지역 동갑내기들이 '인사해 줬다'. 여자애가 있어서 분위기가 온화했던 건가... 쨌든 순전히 1달간 공부만 하고 싶었던 나는 되도록 그들과 소통하지 않으려 했다. 짜여진 시간표대로 수업 듣고, 교실 이동하라 하면 이동하고, 숙제 해오라 하면 하고, 단어 외우라 하면 외우고, 쪽지시험 치라 하면 치고. 솔직히 학원 강사의 열의나 학원에서 뽑아주는 문제 수준은 내 한계실력보다 낮았다. 단어시험용 단어장은 <듀오 2.0>이었던 것 같은데 책에서 강조하는 문장속 맥락은 무시하고 외워야겠는 단어에만 연필로 대충 동그라미 쳐가면서 한두번씩 훑어보니 신기하게도 시험에서 다 맞았다. 반이 비슷한 수준으로 편성되었고 그래서 SKY반이긴 했는데 '명문고'에서 온 내가 제일 잘했고 제일 성실했고 제일 친목질 안했다. 갈수록 반 담당조교였던 충남대 재학생 누나가 꺼내주는 공부 팁, 조언들은 무시하고 쉬는 시간에 교실 뒤편 스탠딩 테이블로 나가 스스로 학원에서 풀어오기로 정한 할당량의 <마닳>을 n회독했다. 애들이 너무 떠들어서 조교쌤이 싫은 소리 하다가 자기 감정을 못 이겨 울었던 건 생각난다.
급식은 사설학원답게 맛있었다. 처음엔 학교에서 맘대로 못 하던(;;) 혼밥을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혼밥은 자연스럽다'고 억지로 자기합리화 하는 게 고통스러웠어서 곧 같은 반 애 중에 똑같이 혼밥하던 애의 앞에 먼저 앉았다. 그 뒤로 여차저차 같은 sky반 남자애들끼리는 밥 먹으러 몰려다녔던 것 같다. 좀 친해지고 나니 "담배 필 것 같은 애?"란 주제로 얘기가 나왔는데 나는 공부를 너무 잘해서 스트레스로 담배 필 것 같다는 농담을 들었다. 윈터스쿨 종강하던 날엔 같이 시내로 뒤풀이를 가기도 했다. 로보쿡에서 빠네파스타를 먹었는데 참 맛이 없었다. 친목질의 종착점 노래방도 갔는데 2000년대 감성의 인테리어가 수족관처럼 괴랄했다. 남들이 주는 마이크를 거절하는 엄근진 시절이었는데 나름 상황을 계산해서 막판에 조용필의 <Bounce>를 불렀는데 반응이 다들 벙쪄 있었다. 이 엄근진 꼬마 국문학자는 3년 후 병영노래방에서 선임병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동네를 말해주면 셔틀버스가 왔지만 기사의 태도가 쓰레기여서 곧 시내버스를 탔다. 셔틀 요금과 시내버스 교통비가 또이또이했다. 셔틀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삼수 사수 오수생들의 비통한 통화소리를 듣기 싫기도 했다. 덕분에 밤늦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피곤한 채 퇴근하는 직장인 베타테스터가 될 수 있었다. 그땐 드라마 미생이 히트할 때라서 '직장인 붐'이 한창이었다. 집에 돌아와선 스스로 '고3이 4시간 이상 자는 건 사치'라고 생각해 오전 2시까지 공부하다 잤다. 생각해보니 고3 내내 수면시각은 2시 아니면 1시였는데 덕분에 낮에 졸음을 면할 수 없었다. 잠은 많이 자고 봐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매일 아침 시내로 출근했다 밤에 동네로 오는 일상을 고3 개학 직전, 2월 말까지 반복했던 걸로 기억나는데 학원 수업을 듣는 윈터스쿨은 1달만이었고, 볼일이 끝났으니 다시 학교 기숙사로 가서 얼마간 (방학중이라서) 자습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그 시내가 낫겠다고 판단해 재수학원에서 애드온으로 운영하는 독학재수관을 끊어 1달간 추가로 다녔다.
갔더니 sky반때 하하호호했던 애들이 그대로 독서실에 있어서 또 한번 시내 밥약을 했다. 한번 가니 이젠 그닥 얘기할 소재가 없어 보여서 그 뒤론 거절하고 내 공부플래너 이행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독학재수가 원래 그러는 데니까. 가장 잘한 공부는 탐구 개념인강 다 떼고 단권화까지 한 것, 가장 쓸데없었던 공부는 수능특강 국어를 정성스럽게 푼 것. 자습실마다 있었던 공용 노트북으로 인강 듣다가 막간에 스트리밍 사이트 deezer를 내 계정으로 접속해(쿠키까지 남기는 센스^^) 5~10분 안에 blink-182의 2집 곡을 듣는 걸로 재미를 꽤 봤다. 지금은 한국 서비스가 막혀서 애플뮤직에 새 플레이리스트를 구축하고 월 8900원을 뜯기고 있다 ㅎㅎ
고3 내내 할 공부의 그야말로 기초닦기뿐을 윈터스쿨과 독학재수관에서 하고 왔다. 마중물이라 봐도 되겠다. 사설 입시학원의 감성도 그때 얻어갔던 거라면 그럴 수 있겠다. 그쪽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 수준이면 강의할 수 있는지.(결론은 학원강사는 인맥 ㅋ)
뭔가 쓰고 싶은 말이 더 있었는데 화장실 갔다온 사이에 다 날아가버려서 이만 마친다.